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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4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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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2,1-5 이것은 아모쓰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이 어찌 될 것인지를 내다보고 한 말이다. 장차 어느 날엔가,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멧부리 위에 우뚝 서고, 모든 언덕 위에 드높이 솟아, 만국이 그리로 물밀듯이 밀려들리라. 그때 수많은 민족이 모여 와서 말하리라. "자, 올라가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주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오, 야곱의 가문이여, 주님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자.
제2독서 로마서 10,9-18 형제 여러분,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성서에도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만민의 주님이 되시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 우리가 일러 준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이사야도 한탄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묻겠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까? 분명히 들었습니다. 성서의 말씀에도, "그들의 소리가 온 땅에 울려 퍼졌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하지 않았습니까?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 주신 대로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어떤 형제님께서 외국을 나가는 친구 배웅을 위해 공항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대합실에서 다른 분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떤 자매님께서 다가와서 “핸드폰을 잠시 쓸 수 없을까요?”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순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던 그 장소 바로 옆에는 공중전화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전이 없나 보지 뭐…….’
그리고는 흔쾌히 허락을 하면서 핸드폰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잠시 통화를 하고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형제님은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라고 밝은 인사를 전한 뒤에 그분과 헤어졌습니다.
이제 친구 배웅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를 걷고 있는데, 저 앞에 오래 전에 은퇴를 한 학교 선배가 있는 것이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고 그래서 특히나 반가웠습니다.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여보~”라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부인이 나타납니다. 그 부인은 방금 전에 공항 대합실에서 핸드폰을 빌려 드렸던 분이었지요.
나중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진 뒤, 이 형제님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핸드폰을 빌려주지 않고 공중전화를 쓰라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또한 밝은 인사를 전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고, ‘세상은 좁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잠시 베푼 친절로 인해서 서로 어색한 관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가 있겠지요.
이처럼 이 세상은 어떠한 식으로도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알지 못하는 익명의 상황에서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기억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서 생활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서 나만 생각하고요, 여기서 조금 나은 사람이라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만큼까지만 신경 쓰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는 세상일까요? 주님께서는 사랑이 흘러넘치는, 즉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원하시는데, 우리들이 실천하는 사랑은 어떻게든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 같거든요.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전교주일입니다. 이 전교주일을 맞이해서 주님께서는 전교하는 방법을 복음을 통해서 말씀해주시네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익명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훌륭한 전교의 방법인 것입니다.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대중목욕탕에서 대야에 발을 담그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대야를 들고 아빠에게 갔습니다.
“아빠, 내가 물 떠 왔어. 이걸로 세수해.” “발 담근 물로는 세수하는 거 아냐.”
“왜?” “더러우니까 그렇지.”
“아빠, 발 담근 물은 더러운 거야?” “응, 발을 담근 물이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바닥으로 쏟아 버렸습니다. 잠시 후 아이는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가 생각하기에는 아빠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는 여러 사람이 발을 담그고 있는 탕 속에 앉아서 그 물로 땀을 씻어 내고, 몸도 닦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판단들이 늘 바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특히 세상의 눈으로 보는 판단은 더욱 더 옳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눈으로 보는 판단은 바로 자신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올바른 판단이 되기 위해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진정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이런 판단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합시다.
두 아들 어느 알코올 중독자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형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있었고, 동생은 그의 아버지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심리학자는 두 삶에게 각각 “당신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형고 아우의 대답은 똑같았다. “모두가 아버지 때문입니다.”
같은 아버지를 보며 바랐지만 형은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으로 승리의 길을 걸었고, 동생은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별 수 없다’는 부정적인 패배 의식으로 살았기에 형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