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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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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 4,32-5,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음행이나 온갖 추행이나 탐욕에 찬 말은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그래야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추잡한 말과 어리석은 이야기나 잠잖지 못한 농담 따위도 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말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짓을 하는 자와 탐욕을 부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아무한테도 허황한 이론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당신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상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 루가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마침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어 주셨다.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모였던 사람들에게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 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 간에서 풀어 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다. 이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나 군중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 갑곶 성지를 찾아주셨습니다. 성지가 점점 알려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기쁨이 가득했지만, 어떤 순례객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기분이 상해지더군요. 그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니, 별 것도 없구만, 뭐가 멋있다고 이곳을 오자고 한 거야?”
물론 제가 옆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계셨던 것이지요. 또 사실 생각해보면 이곳이 잘 꾸며놓은 공원보다 시설이나 환경이 못한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야유회를 오신 것이 아니지요. 야유회가 아닌 성지순례를 오신 것인데도, 멋진 경관과 좋은 편이시설을 찾는 모습에서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더군요.
특히 이곳이 어떤 성지인지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겉모습만을 보고 성지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이곳 갑곶성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면 하나같이 이 갑곶성지가 너무나 좋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지요. 처음에 가졌던 생각과 설명을 들은 뒤에 가지는 생각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곳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알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애정이 생긴 것이고, 그 마음으로 인해 이곳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행에 앞서서 제가 갈 곳에 대해서 공부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당연히 공부를 했을 때, 더 좋은 여행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처럼 알아야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이런 앎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나의 느낌으로, 그냥 나의 판단으로 앎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놓치게 되는 것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대들고 있는 회당장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분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겉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판단으로 예수님을 단죄하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떠하셨나요? 예수님께서는 겉모습만을 보지 않으십니다.
자그마치 18년 동안 병마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한 여인의 아픔과 고통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하루빨리, 아니 지금 당장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속마음을 보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여인을 위해 안식일에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치유도 하지 못하면서, 안식일에는 그런 행동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예수님을 판단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제대로 아셨기에 이렇게 즉시 치유를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도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있나요? 혹시 비록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어떤 규정과 관습을 내세워서 막고 있는 이기적인 회당장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새벽에 다시금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겉만 바라보고 판단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진실을 바라보는 앎을 달라고 주님께 청해봅니다.
제대로 알기 전에 남에 대해서 말하지 맙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박성철 산문집의『더 소중한 사람에게』中에서) 사과나무를 재배하는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이 과수원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알도 굵고 맛있는 사과가 재배 되었습니다. 이웃 과수원의 농부가 그 비결을 묻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 나무를 심을 때 활짝 피어날 것을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모두 이름을 붙여 틈틈이 이름을 불러 준답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과나무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초등학교 교사인 한 선배의 말을 기억합니다. 신학기가 되어 새로 담임이 되어 약 40명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아이들 개개인의 이름을 애써 기억하고 외우기까지 한다고. '야', '너'라고 부르지 않고 꼭 이름을 불러 준다고 합니다.
이제 '야', '너'라는 체온이 담기지 않은 말보다 그 사람의 이름을 따스하게 불러 줄 수 있는 그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름을 불러 주는 것보다 세상에서 더 아름다운 노래는 없다"고 나는 굳세게 믿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