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마태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식 이름은 '레위'(마르코 2,14)이며 직업은 세리(루가 5,27)였습니다. 세리는 직업상 돈에 묻혀 지내는 사람이고 그 결과 영적이거나 종교적인 면에 대한 감각은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계산을 하고 필요한 이득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속이는 것도 필요하였으며, 더구나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므로 반종교적이고 이교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오를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오는 부름받음의 기쁨과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큰 잔치를 차려 그의 집은 동료들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어찌하여 죄인들과 어울리느냐'고 질타를 합니다. 표면상 올바른 듯한 이 질책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기는 의인이나 착한 이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위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상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엄격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자신들을 축성된 사람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하게 행동하며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접촉을 멀리해서 양심의 지순성을 보전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올바르다면 성인(聖人)들인 자신들을 먼저 불러야 하며, 경건하지 못한 세리들은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대답과 행동이 세리와 죄인들을 칭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분명히 병자라고 하셨고 죄인을 분명히 죄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의사가 환자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죄인을 부르는 것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리나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태도이며 그 태도에 따라 참된 하느님 나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거룩함은 자신의 죄의 상태를 인정하고 거기서 해방되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에 있습니다. 이 죄인은 자기에게 없는 것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움을 괴로워하며 그 비움이 채워지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부터의 도움을 갈구합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은총을 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근본조건입니다. 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용서받을 수도 받은 것에 대한 감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인천교구 노형호 (실베리오) 신부
참된 거룩함
2005. 6. 4. 오후 10: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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