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성 마티아 사도 축일(5/14)

2005. 5. 14. 오후 4:59:51

글자
예수께서는 복음에서 "아버지께선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하신다. 그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 계명이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세 계명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얽매어 부담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삶에 참여하여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우리가 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가 당신의 영원한 삶을 함께 누리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서로간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갖고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보다 낫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귐으로써 어떤 득실을 따져서가 아니라, 그에게 어떤 장점이 있고 배울 바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낳음을 받은 똑같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상대방의 약점을 그 개인의 약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결점이며 약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인정하고 섬기는 사랑이 없는 참된 봉사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더 무서운 무관심이 있게 되고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기보다 갈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하느님도 우리 자신도 진정한 삶의 뿌리를 내릴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신앙인의 삶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 종이 아니라 그분의 벗으로서 불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협력자로 불림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이야기 해 주셨고 이제 그들은 벗으로서의 협조을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부르심을 받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나큰 선택이며 책임이라 하겠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파견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가져다주신 새로운 삶과 새로운 생명을 모든 이가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전함으로써 모든 이가 썩지 않는 영원한 삶의 결실을 풍성히 누리도록 선포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이웃을 살펴보고 그들에게 어떠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반성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하자. 우리가 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때 하느님의 사랑도 그러한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생각되는 일까지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하자. 그 때에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 당신의 사랑 안에 더 가까이 머무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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