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 안에는 저의 얼굴이 분명히 있기도 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도 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저에게 있어서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지만, 그 친구에게도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그 친구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네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요, 제가 냉담하고 있을 때 성당에 나갈 수 있도록 끌어주었지요. 그리고 함께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고, 둘 다 이렇게 신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영성체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보니 어떠한 만남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만남이 단 한 번의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언제 보겠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렇게 단정을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첫영성체 받았을 때, 그 친구와 아주 안 좋은 사이였으면 어떠했을까요? 고등학교 때, 그 친구와 대판 싸워서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으면 제가 과연 지금처럼 신부가 되어 있을까요?
어떠한 만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만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상대방이 천사처럼 착한 마음으로 나에게만 잘하기를 원해야 할까요? 그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을 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뀌는 것은 나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거든요. 따라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써 다가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오늘을 대천사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날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함을 오늘 축일을 보내면서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천사의 모습으로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천사의 모습인가요? 이기심과 욕심으로 천사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꼭꼭 닫아두고 사는 세상(박종철)
「돈만 가져가면 되지. 인정머리 없이 그런 것들을 가져가냐」고 말한 동료는 한 마디 덧붙이더군요.
책상에 커다란 자물쇠 하나를 채워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절대 물건을 잃어버릴 일이 없다고. 이제 잠시 어디를 나가도 그 자물쇠를 꼭꼭 채워둘 것이라고…….
글세, 뭐랄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왠지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사람보다 자물쇠가 더 믿음직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든 꼭꼭 닫아두고 살아야 안심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그것이 문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