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잣집에 한 도인이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습니다. 부자는 워낙 이름난 도인인지라 푸짐한 저녁을 대접하고는 사랑채에 묵어갈 수 있도록 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넌지시 묻습니다.
“당신이 바른 길을 걷는데 그 누구도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야 할까요? 그래도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실성한 사람이 아닐까요?”
부자의 이 말에 도인이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집에 있는 하인들 중에서 어떤 하인은 당신이 보는 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다른 하인은 당신이 보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하인을 더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부자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재빨리 대답했지요.
“당연히 내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하인이지요.”
부자의 이 대답에 도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 또한 실성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군요.”
그 누구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의 삶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만을 행하면서,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너무나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솔직히 이 말씀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빼앗길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에, 별 볼 일 없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꾸짖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 앞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따라서 행동하는 이중적인 모습들을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빛이라는 것은 나의 모습을 세상에 보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 빛을 가렸을 때는 어떨까요? 내가 보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빛이 있어야만 내가 세상에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이라는 빛을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이기심이라는 그릇으로 덮어 놓거나, 욕심이라는 침상 밑에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빛이 있음으로써 나의 모습이 세상에 보일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빛 위에 올라서면 빛이 되는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 앞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아갔을까요?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발걸음(‘좋은글’ 중에서)
며칠 후 아침, 소년은 학교에 가려고 신발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새 운동화는 아니지만 자신의 발에 맞는 깔끔한 운동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새벽에 나간 아버지는 운동화 밑에 이런 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신발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발걸음으로 살거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