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원장신부님 졸업식 축사 !!!!!

2011. 3. 14. 오전 9:43:18

글자
  찬미 예수님 !!!
 
  3월 12일(토)  교리신학원  기도의 집  봉사 마치고
 
  마침  끝나는  시간 쯤 그곳에  들르셨던  김진태 원장 신부님과  함께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신부님께  부탁하여  "졸업식  축사"를   오늘  E-mail로  받았습니다.
 
   졸업식날을  기억하며  감동스러웠던  신부님의  축사를  즐겁게  읽어 보세요  ^&^ !!!
 
       박동주 (야고버호세아)   

  

        2011. 1. 29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식 김진태 신부 

먼저 우리에게 이 은총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기대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우리는 오늘 졸업과 수료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졸업하시고 수료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동안 어려운 공부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을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신학원에 오시느라 매일 4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도 3년 동안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대전에 아내를 두고 공부를 위해 상경해 셋방에 사셨고, 어떤 분은 새색시가 새신랑을 지방에 멀리 떨어트려 두고 서울 유학 생활을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중국에서, 미국에서 그곳 삶을 다 놓고 와서 공부하셨습니다. 또 저녁반 많은 분이 직장이 끝나자마자 오시느라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퇴근하며 야학에 전념하셨습니다.

외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내며 다니면서도, 학급에서는 등록금을 못 내는 학우가 있을까봐 서로 걱정해 주었고, 학우가 다리를 다쳐 학교에 못 올까봐 매일 집까지 찾아가 차로 등하교를 시켜 주었습니다.

 발을 다쳐 계단을 못 오르면, 서로의 발이 되어주었고, 새벽에 남보다 일찍 와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며 등교하는 다른 학우들이 불편하지 않게 돕기도 했습니다.

 도시락 준비를 못 해온 학우를 위해 넉넉히 반찬과 밥을 준비해 나누면서, 옛날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고 ‘도시락우정’을 키우기도 했고, 직장 끝나고 정신없이 오느라 식사를 거르는 학우를 위해 매일 떡과 빵을 준비해 ‘떡우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못 따라오는 학우를 위해서는 바쁜 자기 시간을 일부러 내어 공부할 내용을 대신 잘 정리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또 수도자들은 나름대로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임지’를 복음의 이상을 구현하는 또 하나의 장소로 살며 신앙과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험이 다가오면 안 외워지는 어려운 단어나 문장들을 “우리 엄마 이러다 박사 되겠네” 하는 아들의 너스레떠는 소리를 들으며 밤늦게까지 불 밝혀 외웠고, 리포트 낼 때가 다가오면 한없이 초조해 하며 “이것이 죽을 맛이란 거구나” 하고 간장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지나면 정말 병이 나기도 했습니다.

 기도의집 청소, 무거운 물건 이동에 ‘노력봉사’를 하면서, 또 강의실 청소,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인내를 키웠고, 괜히 싫은 사람과도 같이 어울리며 사랑을 키웠습니다.

 이런 모든 시간들이 지금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처음에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사랑과 이해의 신학원 삶 속에서 다 떨쳐내고 자랑스럽게 여기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여느 학교공부처럼도 보이지만, 신학원에 다니는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도 때로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이곳으로 초대한 교리신학원 원장 자신도 여러분이 왜 여기 와서 이렇게 사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일부러 이렇게 고생을 택하시는지?

하지만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신학원에 다니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여러분의 말씀이었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그 시간들이 정작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을 보면서 저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해묵은 물음을 다시 던져보았습니다.

 유용하고 편리하고 쾌락을 주는 것을 행복과 동일시하려는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여러분을 볼 때 무엇인가 큰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편리나 쾌락은 분명 우리에게 행복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불편 속에서도 확신하는 그 행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 하느님에 대해 듣는 것, 하느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것, 하느님을 배우는 것, 한마디로 말하면 어렴풋하게라도 하느님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또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되고, 우리 정신이 정화되고, 우리 자신의 정직한 자아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면, 사회에서 남들에 눌려 빠진 열등감이라든가, 이유 없는 우월감이라든가, 숨긴 콤플렉스라든가, 감춰진 수치심이라든가 하는 것이 외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나의 종교생활 한가운데서 나를 위선과 독선의 늪으로 빠트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게 된 정직한 나 자신을 볼 줄 아는 용기, 그런 용기 있는 자세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하느님 모습, 그것이 세상 어느 것도 중개해 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분이 신학원 공부 소감을 청하는 저에게, “매일 매일이 피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의 행복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끝까지 이해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들 어떻습니까?

 우리는 행복했고 지금 또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깊이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대한 수많은 말마디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하느님 공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듯이,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래서 사람이 되어 강생하셨다는 우리 신앙의 핵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합시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것,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비합리적인 것, 반합리적인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을 공부하고, 사랑을 살아 본 사람에게는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랑만큼 이성에 자명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 논리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초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초합리적인 것을 머리와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 그 많은 몰이해와 불편 속에서도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이제 향락과 풍요 속에서도 마음으로는 불행해 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불편 속에서도 체험할 수 있었던 그 행복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유식한 말마디로 전해주려 한다면, 사람들 이성에 그것이 쉽게 합리적인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러분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말로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행복을 찾는 사람들 마음에 가슴에서 가슴으로 나눠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으로 사랑을 전하고, 행복으로 행복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받은 “선교사자격증”의 의미일 것입니다. 선교사 자격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 시간,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1, 17) 하고 통절하게 호소하시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모으시고 우리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주신 예수님께서 서로 헤어지는 우리들도 우리가 어디서 살든 상관없이 우리를 계속 묶어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이 자리가 있기까지 앞에서 뒤에서 깊은 배려와 수많은 희생 노력을 해 주신 추기경님, 신부님들, 교수님들, 가족분들, 그리고 모든 신학원 공동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3

  • 2011년 3월 14일 오후 1:41

    감동 ! 그 자체.

  • 2011년 3월 16일 오후 4:24

    사랑으로 사랑을 전하고 행복으로 행복을 전하라....다시금 감동입니다!!!

  • 2011년 3월 16일 오후 11:01

    저도 감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