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신드롬

2009. 6. 15. 오전 7:49:30

글자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어라”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 무조건 참아라, 무조건 용서해라, 무조건 사랑해라는 식으로 이해를 합니다. 물론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복수의 칼날을 세우지 말라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음의 것과 함께 보완되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끌려가서 대사제 한나스의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께 “대사제에게 어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느냐?”며 예수님의 뺨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아무 말도 없이 무조건 맞기만 하셨을까요?


그분은 이러셨습니다.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그분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에 침묵하시지 않습니다. 불의를 묵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왼뺨마저 돌려대라는 것은 무조건 참아라, 참아라, 참아라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실제 많은 교우분들이 상담을 합니다. 참고 참았는데 도저히 안되겠다며 화병을 털어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당에서 그렇게 가르쳐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당에서 말하는 착함은 “정의”가 배제된 “착함”이 아닙니다. 무조건 굴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말씀은 폭력은 비폭력으로 대항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불의에 대해서 항거하시면서도 끝까지 왼뺨을 내놓는 용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무조건 착하다고 해서 전부가 아닙니다. 착하면서도 나쁜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이에 대해 비폭력의 방식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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