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교 확장의 최고 수훈자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로
바울로의 생애는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건을 중심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이 사건은 단지 바울로 개인의 생애에만 획기적인 사건이 아니라 회개한 그 인물의 탁월한 개성으로 본다면 초대교회 전체가 카다란 비중을 갖는 사건이다.
이 개종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의 교회 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가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원 후 약 5년-10년 사이에 다르소에 정착한 베냐민 지파의 한 유다인 가정에서 바울로는 태어났다.
바울로의 가족은 디아스포라(해외 거주 유다인)에 속했다.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흔히 소수 민족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혜를 누렸다.
이 특전들 가운데는 로마 제국의 관례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자신들의 자신들의 공동체를 조직하는 권리와 재판자치권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로이 종교의식을 행할 수 있었고 황제숭배도, 군복무도 면제받았다.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얻을수도 있었는데 바울로는 로마식 이름이며 사울은 유다식 이름이다.
디아스포라의 모든 경건한 유다인들처럼 바울로와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의 성전과 사제직 및 희생제사에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
바울로는 젊은 시절에 한때 극히 엄격힌 율법준수를 훈련받았고 예루살렘의 유명한 선생 가믈리엘 밑에서 공부를 하였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로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무렵에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테파노의 순교를 목격했으며 헬레니즘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박해 운동에 앞장섰던 것이다.
하지만 교회 박해자로서의 그의 사명은 명이 길지는 못했다.
바울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부활하신 예수의 영상을 목격하고 그 결과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있은 지 2년쯤 뒤에 일어난 이 사건은 초대교회의 극히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체험은 바울로를 변화시켰는데, 그것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인격의 대대적인 변동에 의한 변화였다.
바울로의 개종은 돌발적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하느님의 역사(役事)였던 것이다.
바울로는 주 예수의 내림(來臨)을 구약성서 전체의 실현으로서만이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으로도 인식했다.
바울로는 개종함으로써 전체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발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몸 바친 그리스도 의 '종',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투신한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였다.
그는 회개와 동시에 사도로서의 소명을 받았으며 또한 자신을 부른 하느님의 뜻이 이방인 선교에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바울로는 사도직에 불림을 받을 때부터 자신의 선교 소명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파악했으며, 또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에게나 마땅히 전해져야 할 복음의 가치를 확실하게 깨달았고, 그러한 확신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가 수반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그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 만인의 사도로 만들었다.
* 참고서적 ; 2001년 신학통신교재 학습지도안 1-1 펴낸이 ; 김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