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수련장에서 전숭규 아오스딩 신부님 피정 말씀

2006. 2. 6. 오후 12:18:08

글자
 

<교리신학원 1학년 피정에서-2006년 2월 4일/ 의정부 한마음수련장>

1. 여러분들을 보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극성맞다’는 것입니다.

학기 중에도 바빠서 쩔쩔 매면서 방학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어 모이는 것을 보면 여러분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참으로 극성맞다!

사람도 많은데 그 먼 연천까지 데리러 오시는 분은 더욱 극성맞습니다.  극성맞은 여러분에게 극성스런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제 수녀님들 6분이 2박 3일 동안 저희 성당에 연수를 오셨다 가셨습니다.

수녀님 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느 할머님이 노인대학에서 하는 삼행시를 배웠습니다.

원두막이라는 ‘삼행시’입니다.

한번 운을 띄워 보실래요?

원-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두-두쪽 다 빨개. 막-막 빨개.


할머니는 너무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했다가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얘기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영감, 원숭이에 관한 재미있는 삼행시 하나 알려 줄 테니 당신이 운을 띄워 보슈”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운을 띄웠습니다.

한번 ‘원숭이’ 운을 띄워 보세요.

원-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숭-숭하게 빨개. 이-이게 아닌데?


제 이름을 제대로 아는 분이 없습니다.

가운데 자가 ‘숭하게 빨개’하는 ‘숭’자입니다.


2. 은성기 요한 형제님 오셨나요?

지난해 말, 은성기 형제님이 저에게 이순신 장군이 쓴 책인

<난중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껏 답장을 못해드리고 말았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책 속에 편지와 함께 <답설>이라는 한문시를 보내셨습니다.

한문으로만 써주셨으니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말, 양로원 할머님들 25명을 모시고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갔습니다.

오는 길에 상해를 들렀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였습니다.  그곳에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집무실이 있고, 밀랍으로 만든 김구 선생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때 <답설>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 평소 좋아했던 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답설(踏雪)

踏雪野中去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遂作後人程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씨는 서예가 호석 김상희라는 분의 글씨입니다.

우리 성당에서 한번 강론을 했더니 팔순이 다 되신 할아버지가 당신이 아는 유명한 서예가에게 부탁을 해서 글을 받아 온 것입니다.

우리 성당 신자들의 문화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사실, ‘국화전시회’도 보통 문화적인 소양이 없으면 못합니다!

꽃을 감상하는다는 것은 한 차원 높은 문화생활입니다.

본당신부가 문화인이라 우리 신자들도 문화수준이 높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국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요즘 시간만 나면 국화 농장에 가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산으로, 계곡으로 나무 뿌리를 주우러 다닙니다.

거름이 있으면 전방에라도 가서 가져 옵니다.

엊그제 전방에 콩깍지 썩은 것이 있다고 해서 세 트럭 가지고 왔습니다.

근 10년 썩은 거름인데 그 속에 굼벵이가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잡아다가 아픈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게 엄청나게 비싸답니다.


지난 해 말, 비닐하우스 다섯 동을 지었습니다.  그 안에 온실이 두 개입니다.

저는 국화 농장의 사장님입니다.

요즘엔 온실에 연탄을 때는 데, 하루에 연탄을 50장이나 갈아야 합니다.

올해는 제대로 하자해서 지난 해 말에 국화 전문가 두 분을 모셔왔습니다.

팔순이신 분과 칠순이 되신 분들인데,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국화를 제일 잘 키운다는  분들입니다.  두 분 다 신자는 아닙니다.

한분은 매일 오시고, 한분은 주말에 오십니다.


지금 2년된 국화가 제 키보다 큰 것들도 있습니다.

올해 대국이 천 송이를 피울 것입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제일 많이 피워야 150송이였답니다.

일본이 국화는 앞서는데 천 송이 국화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한둘이랍니다.

꿈의 천 송이!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

일본에서 제일 큰 국화 농장이 <국화원>입니다.

책과 재료를 주문하면서 서로 연락을 하는데 그 사장이 우리 농장에 봄에 오겠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원래 <답설>이라는 시는 서산대사가 쓴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힘이 들고 삶이 고단할 때,

이 시를 마음에 새기며 고난을 이겨냈답니다.


산다는 것은 흰 눈밭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발자국을 보고 뒷사람은 길인 줄 알고 따라옵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내딛는 발걸음은 내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신앙을 가진 우리를 보고 하느님을 봅니다.

우리의 한마디 말과 행동 하나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표징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조고각하!

발밑을 보아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걸어라!

많은 선승들이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길을 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침이기도 합니다.


원래 여러분들이 교리 신학원에 입학하시기 전에 야간반의  폐지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하도 극성맞아서(?) 다시 고려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눈밭을 조심조심 걸어서 뒤따라 가는 후배들이 길을 잃지 않고 잘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3. 서산대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 봅시다.

어릴 때부터 저는 스님 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잘 아는 회장님이 서울서 저희 성당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소문내지 않고 일 년이면 몇 억원씩 기부를 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서산대사가 쓴 글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글이 꼭 당신을 두고 한 말 같아서 몇 번이고 읽고 있답니다.


<이보게, 친구!>라는 글입니다. /서산대사

이보게, 친구야!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들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고,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산대사,

그가 85 세로 운명하기 직전, 위의 시를 읊고 나서 제자들 앞에 앉아서 입적하였답니다


우리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우리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사람 마음의 밭에 우리의 추억의 씨앗을 남기는 것, 이것이 영생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할 일은,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뿐입니다.(루가 17,10)”하고 고백하면 그로 족합니다.


4. 복음에는 눈 뜬 소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경이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소경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묻습니다.

소경은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라고 말씀하시자 소경은 곧 보게 됩니다.


현대 생활을 특징 짓는 말들; 물질, 돈, 편리, 기능, 속도 등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상살이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감각적인 것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풍조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유하고 즐기고 누리려 들 뿐,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보람이나 가치에는 눈이 멀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영위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다음 예수님은 소경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씀도 되지만,

믿음이 인간을 살린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고, 믿지 않고 사는 삶은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살 때 삶은 진정 보람 있고, 그것이 영원히 사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마음의 눈을 뜬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5. 강산애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참 의미가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부터인가 걸어 걸어 오는 이 길

앞으로 더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 길 중 만약에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돌아서 살 수 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나 쉴 수 있겠지...

그 후로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라는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 내 앞 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 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오늘날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편한 길이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내가 사는 이 길만이 유일한 정답인가?

교리신학원을 다니면서 수없이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다 보면 그 어느 날, 우리가 살아온 이 길이 축복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한한 인생을 보다 의미 있게 살고자 어려운 과정을 가고 있습니다.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훗날 여러분이 생을 되돌아볼 때 교리 신학원의 생활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로 얘기를 마칩니다.


‘나는 잠이 들어 꿈을 꾸었소.

거기서 삶은 기쁨이었소.


나는 잠에서 깨어났소.

이제 보니 삶은 섬기는 일 뿐이었소.


나는 섬기는 일에 온 마음을 쏳았소.

그러고 보니 기쁨은 거기 있었소.


오, 임이시여!

내 삶으로 하여금 풀피리를 닮아

꾸밈없고 곧게 하소서.

임께서 그것을

당신의 선율로 채우실 수 있도록.“


댓글 9

  • 2006년 2월 6일 오후 12:22

    전숭규 아오스딩 신부님! 피정 말씀 너무 감사했습니다.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고 주님 안에서 은총 가득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천송이 국화꽃도 멋드러지게 필것을 확신합니다. 아멘!

  • 2006년 2월 6일 오후 7:07

    저도 아멘~~~

  • 2006년 2월 6일 오후 7:42

    은성기님 감사드려요.이글을 읽으니 전숭규신부님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때가 축복의 시간이 였음을 이미 느끼고 있어요,감미롭고 행복한 피정이였어요. 두분 신부님과 달님반 형제 자매님께 감사 드려요.

  • 2006년 2월 7일 오전 1:12

    헐크가 알고 보니 상당히 얌체로군요! 혼자서 슬쩍 신부님 챙기고... 여러 면에서 우리 달님반을 앞장 서서 이끄시려니 발자국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앞으로도 달님반의 영적 지도자이시며 '숭허게 뻘건' 전숭규 신부님을 잘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 2006년 2월 7일 오전 5:19

    긴 강론 말씀 타자로 옮겨 쓰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7장이나 되는 글을 옮겨 치자니 오자가 몇자 보입니다. 두고 두고 읽으면서 우리의 다짐을 새롭게 할 생각입니다. 신부님,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회장단께 감사 드립니다.

  • 2006년 2월 7일 오전 8:28

    역시 친교는 같이 먹고, 자고 해야....올해는 다같이 공부도 열심히 합시다...피정에 참석하신분들께 거듭 감사 드립니다...또한 같이 하고 싶어도 사연이 있어 함께 못하신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2006년 2월 8일 오전 12:21

    헐크님 긴 강론을 어찌 이리 잘 옮기셨나요? 놀랍슴다. 답설 무척 아름다운 시입니다. 붓으로 하나 써 주세욤!! 그리고 대표님을 비롯한 임원진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2006년 2월 8일 오후 8:01

    정말 아름다운 피정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모두들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고 평생토록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을 담았으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 2006년 2월 9일 오전 1:47

    피정 함께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특별교육을 추진해보까~? 김아녜스, 김요한, 류다니엘라, 박대건안드레아, 양율리안나, 유마리아, 이실비아, 이카타리나, 이바울라, 이수사님, 이요엘수녀님, 임데레사, 조안드레아, 김데레사, 님들 너무너무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