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피하는 '마지막 방법' (성 소화 데레사)

2006. 2. 1. 오전 12:56:30

글자

  사랑하는 원장님, 싸움에서 패배를 피하는 마지막 방법은 도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방법을 수련시대에 벌써 썼습니다만, 그것은 언제나 완전히 성공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겠는데, 그걸 들으시면 원장님도 웃으실 것입니다. 원장님이 기관지염으로 앓으실 때, 저는 제의방을 맡아보는 까닭에, 하루 아침은 영성체 난간 열쇠를 갖다 놓으려고 가만가만히 원장님 방으로 갔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당신을 뵈올 이런 기회를 가진 것이 싫지 않고 무척 기쁘기까지 하였지마는,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열심이 대단했으며, 또한 저를 사랑하고 있던 자매 한 분이 제가 당신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제가 원장님을 깨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 자매는 제게서 열쇠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저도 성질이 보통내기가 아니라, 열쇠를 주거나 제 권리를 양보하려 안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대로 공손히, 저도 그 자매모양 원장님을 깨우지 않도록 할 터이며, 열쇠를 갖다 드리는 것은 제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젊기는 젊으나 아무튼 저보다는 나이를 더 먹었던 그 자매에게 양보했어야 더 완전하였으리라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그때에는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문을 미는 그 자매 뒤를 억지로 따라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곧 우리가 염려했던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낸 소리에 원장님이 눈을 뜨셨습니다. 원장님, 그래서 모든 죄책(罪責)은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반항했던 자매는 즉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는데, 그 줄거리는 이러하였습니다. 소릴 낸 것은 아기예수 데레사 자매랍니다. 참말 불쾌해요. 전연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저는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마는, 다행히 훌륭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변명을 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제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비난을 들을 만큼 제 덕이 굳세지를 못하니까, 구원의 마지막 널 쪽은 오직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로마에 대한 카밀로의 저주와 흡사한 연설을 계속하고 있는 그 자매를 뒤에 두고, 저는 쓰다 달다 말없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 가슴이 어떻게나 세게 방망이질 하는지 멀리는 갈 수가 없어서, 층층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제 승리의 열매를 맛보았습니다. 원장님, 그것은 용맹은 아니지었마는, 질 것을 뻔히 아는 때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아! 제 수련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얼마나 불완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너무도 하찮은 일도 괴로워 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에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