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신앙생활은 하지만 몸이 너무나 허약해서 각종 병을 안고 사시는 형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신앙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늘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하느님께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조금 이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형제님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 바위를 매일 같이 밀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형제님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기쁨에 그리고 이 바위를 밀어 놓은 다음 자신의 병을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에 매일 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바위를 밀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글쎄 8개월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꿈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인데, 정말로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혹시 개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를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는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는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8개월 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원통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느님께서 이 형제님께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니?”
“당신 때문이에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를 왜 옮기라고 하신 것입니까?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저한테 시키신 것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단지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지.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거울 앞에 선 그 형제님께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위를 움직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형제님을 변화시키는 것에 하느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위를 옮겨놓는 것보다 바위를 미는 행동 자체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도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바위를 움직이지 못했다고 절망하는 이 형제님처럼, 스스로 세운 결과에만 집착하고 절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눈앞의 현실은 그 바위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역시 조금도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이 고통과 시련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이 변화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을 보면서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혹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만을 보면서 한숨만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이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것도 나를 위한 하느님의 배려니까요. [빠다킹 신부님 매일 묵상에서..]
문득 이 글을 읽으며 신학원의 어려운 공부를 좀 쉽게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한숨 쉬었답니다.. 하지만 신학원이라는 바위를 그저 밀기만 해도, 그 바위를 옮기지 않더라도.. 어느새 나에게도 맑은 지성의 빛이라는 근육이 붙을 것을 막연히 기대해보며.. 나를 비우고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점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달님반 사랑하는 형님, 누님, 동상들.. 좋은 주말밤 평화롭게 보내시길 빕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