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암흑물질
나는 여백의 아름다움에서 암흑물질의 미소를 보았다. 지난 14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09 오디세이’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9인의 걸작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개막 첫날에 달려갔다. 내 호흡의 멈춤을 의식한 건, 민병헌의 ‘스노우랜드’ 시리즈의 한 작품 앞에서였다. 나는 왜 백설에서 암흑물질을 떠올렸을까.
별이 단위 시간에 방출하는 빛 에너지의 총량, 즉 광도는 별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질량을 알고 싶으면 광도를 측정하면 된다. 은하가 별들의 집단이므로 은하의 광도를 측정하면 질량도 알아낼 수 있다. 은하단을 구성하는 은하 하나하나의 질량을 이런 식으로 모두 측정해 결과를 합하면 그 은하단의 전체 질량이 나온다. 편의상 이렇게 계산된 질량을 우리는 ‘광 질량’이? ?부른다. 은하단의 질량을 측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중력과 원심력의 평형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은하단의 외곽부에 자리하는 은하 하나의 궤도 운동 속도를 측정하면 원심력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 한편 이 원심력과 겨룰 중력의 세기는 궤도 내부에 들어 있는 물질의 전체 질량이 결정한다. 즉 이 둘의 평형 조건에서 은하단의 질량을 산출할 수 있다. 이렇게 산출된 질량을 ‘중력 질량’이라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은하단의 중력 질량이 광 질량보다 훨씬 크다는 데 있다. 개별 은하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균적으로 전체의 10%만이 빛을 내는 통상의 물질이고, 나머지 90%의 질량은 정체불명의 암흑물질이 차지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빛이 천체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관측 수단인데, 암흑물질이 중력 이외에는 빛과의 상호작용을 일절 거부하니 그 정체를 직접 알아내기가 무척 어렵다. 암흑물질이 어차피 관측에 걸릴 가망이 없는 존재라면 그냥 무시해도 좋으련만 우리에겐 그럴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다. 정체불명의 암흑물질이 우주의 거대구조를 지배할 뿐 아니라 우주의 미래까지 점지하기 때? ?甄? 우주의 평균 밀도가 어떤 임계값보다 크다고 판정되면 우리의 우주는 닫힌 우주다. 언젠가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운명의 우주란 얘기다. 작으면 열린 우주이고, 같으면 평탄 우주가 된다. 그런데 평균 밀도의 거의 전부를 암흑물질이 쥐고 있으니, 빛을 내는 물질만 열심히 측정해봤자 우주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현대 천문학의 고민이 있다. 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주의 운명을 지배하는 존재가 바로 암흑물질인 것이다. 산수화의 멋을 여백이 살린다면, 밤하늘의 별이 찬란한 건 전적으로 암흑물질 덕이다. 민병헌의 ‘스노우랜드’ 연작은 사진이라기보다 여백의 의미와 위력을 극대로 살려낸 산수화였다. 해서 나는 순백의 백설 앞에서 침묵의 암흑을 떠올렸던 것이다. 기도를 해본 이라면 누구나 안다, 신의 침묵을. 암흑물질이 우주의 운명을 지배하듯 그분은 침묵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가 보다. 여태껏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돌아보면서, 나는 내 삶의 굽이굽이에서 신의 작은 미소들을 알아본다. 고통을 당할 때는 저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다시 헤집어 보니 ? 陋?모두 은총이었다. 그렇다면, 기도란 침묵하는 신의 미소를 읽어내는 일. 홍승수 서울대 교수·천문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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