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53

2006. 8. 23. 오후 2:59:20

글자
1. 퍼거슨이 판 니스텔로이를 버린 이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사상 최악의 여름(이적 시장)을 보냈다는 혹평과 우려 속에 개막한 2006/2007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에서 풀럼을 5-1로 완파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19일과 20일, 양일에 걸쳐 개막전으로 치러진 10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고, 최다골차 승리를 거두며 1라운드 테이블에서 당당히 1위를 마크했다.

1992/1993 시즌에 출범한 프리미어십에서 보낸 14시즌 동안 무려 8차례나 정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왔던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3년간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며 침울한 시기를 보냈다. 승리를 이끌던 영웅들이 퍼거슨 감독과의 개인적인 마찰이라는 이유로 하나둘씩 팀을 떠나갔고, 그와 비례해 라이벌 아스널과 첼시에게 빼앗겼던 리그 타이틀의 탈환이 더뎌지면서 비난의 화살은 퍼거슨 감독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퍼거슨 감독에게 집중된 비난의 화살

2005/2006 시즌에 팬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로이 킨이 시즌 도중에 방출되고, 판 니스텔로이가 벤치를 지키다가 끝내 팀을 떠나버리자 팬들은 분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력 공백 속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여름 이적 시장 기간 동안 선수 영입 작업에서 고전을 면치못했다. 186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거액을 들여서 영입한 것은 마이클 캐릭 1명에 불과했다. 판 니스텔로이의 대체자 영입에 실패한 채 시즌을 맞이하자 팬들의 불안감은 컸다. 일부 팬들은 퍼거슨 감독의 독선 때문에 스타 선수들이 맨유행을 기피한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퍼거슨 감독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년이나 장기 집권하면서 노망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미 과거의 총명함을 잃고 아집과 독선만 남았고,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재기됐다. 더이상 팀의 중심 스타들을 쫓아내지 말고 퍼거슨을 쫓아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미어십 개막전은 퍼거슨의 호언대로 진행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들은 시종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며 차례로 득점에 성공했고, 가장 성공적으로 개막전을 마치며 팬들의 모든 우려와 비난을 일축했다. 오랜 리빌딩 기간을 마친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다시 위대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7만6천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증축된 올드 트래퍼드에 팽배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많은 영웅들이 안좋은 뒷마무리를 보이며 팀을 떠났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적절한 대체자의 등장을 통한 올바른 선택으로 귀결됐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적절했다는 것이다. 박지성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던 판 니스텔로이의 방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맨유에서 가장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던 영웅 에리크 칸토나는 팀을 떠난 이후에도 무한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어 퍼거슨 감독의 성격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팀과 불편한 작별을 고했던 선수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아닌 그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언제나 간과되어왔다. 퍼거슨 감독은 개인적인 이유로 그들을 쫓아내려한 적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은 경기력적인 면에서도 하강점에 도달해있었고,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불쾌해했다. 퍼거슨 감독은 관심은 오로지 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를 펼치고, 팀이 단단하게 규합하는 것에 있었다. 박지성에 대한 퍼거슨 감독의 따뜻한 배려를 통해 우리는 퍼거슨 감독이 단순히 독선적이고 다혈질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베컴이 팀을 떠났을 때와 같이 퍼거슨의 선택은 개막전에서 곧바로 옳았음이 판명됐다. 최상의 폼을 잃어버리고 팀의 분위기까지 헤치는 선수를 팀에 놔둘 수는 없었다. 퍼거슨이 그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솔샤르가 부상으로 2년간이나 전력에서 이탈했음에도 끝까지 그의 재활에 힘을 기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퍼거슨의 위대한 역사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영국 황실로 부터 기사 작위를 하사 받은 영국 축구의 몇 안되는 위대한 영웅이다. 퍼거슨의 이름에는 `경`이라는 존칭이 따로 붙는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퍼거슨은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조국 스코틀랜드에서 언제나 레인저스와 셀틱의 그늘에 가려있던 애버딘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유럽 클럽 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르게 하는 등 기적적인 지도력을 선보였다.

애버딘에서의 성공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퍼거슨은 8차례의 리그 우승과 5차례의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1999년에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의 위업을 이뤄내며 세계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그는 8차례나 잉글랜드 올해의 감독에 뽑히며 최다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재직한 20년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영국 최고의 클럽으로 도약시켰다.

퍼거슨 감독과 수퍼 스타의 충돌

90년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첼시가 아브라모비치의 자금력을 등에 업기 까지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무리없이 프리미어십의 정상을 달려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쟁자로는 아스널이 유일했다. 이러한 황금기를 주도한 선수들이 모두 감독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팀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시초는 2001년에 네덜란드 대표 수비수 야프 스탐이었고, 2003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이었던 데이비드 베컴이 떠나갔다. 2005년에는 팀의 주장 로이 킨이 불명예스럽게 올드 트래퍼드를 떠났고, 2006년에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던 판 니스텔로이가 끝내 레알 마드리드로 향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경기 외적인 이유로 감독과 마찰을 보인 끝에 떠났지만 실상은 퍼거슨 개인의 감정적인 이유가 아닌 팀 전체를 위한 결정이었다.

① 야프 스탐 -> 리오 퍼디낸드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야프 스탐은 90년대에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라는 명함을 달고 맹활약을 펼쳤다. 장신에 탄탄한 체구,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능력과 대인방어 능력, 불굴의 투지와 카리스마는 스탐을 거대한 벽으로 보이게 했다. 1998년에 영입된 스탐은 이적후 처음 맞은 1998/1999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사적인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는데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2000/2001 시즌 도중에 스탐은 자서전을 발표하면서 파문에 휩싸였다. 그곳에는 비밀로 지켜져야했을 맨유행의 뒷 이야기를 비롯해 몇몇 선수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의 글들이 실려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이에 분개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은 스탐의 발언으로 인해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때마침 스탐의 경기력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은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고전했다. 퍼거슨 감독은 웨스트햄과 리즈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무섭게 떠오른 신예 리오 퍼디낸드를 주목했다. 2001년 여름에 스탐을 정리한 퍼거슨은 2002년 여름에 월드컵에서도 활약을 펼친 리오 퍼디낸드의 영입에 성공했다. 3천만 파운드는 수비수 사상 최고액의 이적료로 기록됐다.

스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난 뒤 이미 전성기가 지난 듯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 동안 그는 좋은 경기를 펼치지도 했지만 더이상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반면 리오 퍼디낸드는 스탐으로 부터 세계 최고의 수비수라는 명함을 빼앗아 왔다. 리오는 빠른 속도로 맨유에 녹아들었고, 그는 어느새 팀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가 됐다. 맨유의 수비진은 스탐이 떠나고 보다 젊고 왕성한 퍼디낸드로 인해 업그레이드 됐다.

② 데이비드 베컴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데이비드 베컴은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다. 맨유가 베컴이었고, 베컴이 맨유였다. 칸토나로 부터 7번을 물려받은 베컴은 맨유의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으로 영국 축구가 낳은 사상 최고의 스타였다. 베컴의 존재는 맨유를 세계적인 명문 클럽이자 인기 클럽으로 만들어줬다. 베컴의 7번이 마킹된 맨유의 유니폼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베컴이 자랑하는 황금의 오른발은 맨유의 승리 공식이었다. 베컴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도 활약하며 영국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베컴은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당한 부상으로 경기력이 급강하했다. 그는 트리플 크라운의 위업을 이룬 99년부터 2001년까지 황금기를 보냈다. 맨유는 베컴을 중심으로 전술을 구성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에서의 부진 이후 베컴의 경기력은 여전히 빼어났지만 이전의 폭발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듯 보였다. 베컴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은 더이상 퍼거슨 감독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은 팀의 중심을 베컴에게서 빼냈고, 베컴은 자신의 영향력이 감소하자 여느 유럽 선수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언쟁을 벌였다. 베컴과 퍼거슨의 충돌은 언론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급기야 라커룸에서 퍼거슨이 던진 축구화가 베컴의 눈두덩이 상처를 입히며 상황은 돌이킬 수 없어졌다. 베컴과 퍼거슨의 충돌은 팀의 분위기를 흐트러놓았다. 2002/2003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 베컴은 벤치를 지키기에 이르렀다. 베컴은 이후 교체 투입되어 2골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지만 웃지 않았다. 결국 베컴은 2003년 여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크게 게의치 않았다. 비어있는 7번의 대체자는 금새 나타났다. 퍼거슨 감독은 포르투갈 축구가 배출해낸 최고의 신성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1200만파운드를 들여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베컴에 버금가는 매끈한 외모와 날카로운 오른발 킥 능력을 자랑하는 그는 화려하고 폭발적인 돌파 능력까지 갖춰 퍼거슨 감독의 새로운 구상에 최적의 선택이었다. 호날두는 2003/2004 시즌 개막전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고, 맨유는 더이상 베컴의 롱볼이 아닌 경기장 전역에 걸쳐 쉴세없이 전진하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팀으로 거듭났다. 베컴은 많이 뛰는 선수지만 빠른 선수는 아니다. 그는 퍼거슨의 새로운 플랜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였다.

호날두는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 대표로 선발되어 유로2004에서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 이적후 단 하나의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한 클래스를 보이며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나버린 모습이었다. 반면 호날두는 해가 갈수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외모적인 면에서도 호날두는 프리미어십에서 가장 섹시한 외모의 선수로 꼽혔다.

③ 로이 킨 -> 마이클 캐릭

로이 킨은 칸토나가 팀을 떠난 이후 맨유에서 강한 카리스마로 주장직을 맡아왔다. 그는 강인한 카리스마와 터프함으로 아스널과의 라이벌전에서 기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왔고, 팀의 강한 구심점이 되어왔다. 그는 정신적인 면 뿐아리나 실력적인 면에서도 최고였다. 그는 탁월한 수비력과 경기 조율 능력에 득점력까지 갖춘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그는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종종 이성을 잃고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 2005/2006 시즌에 불안정한 출발을 보인 맨유는 첼시와의 일전을 앞두고 로이 킨을 부상으로 잃었다. 부상을 당한 킨은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맨유의 젊은 선수들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가했다. 킨의 의도는 선수들이 좀더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지만 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일명 `키노 게이트`로 불리운 이 사건은 퍼거슨 감독이 킨을 내치게하는 도화선이 됐다. 킨의 발언 이후 맨유는 첼시에게 시즌 첫 패를 안기며 순항했다. 하지만 킨의 발언은 알게 모르게 맨유 선수들에게 불협화음을 안겼다. 부상 이후 회복이 더뎌지던 킨은 결국 맨유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스코틀랜의 셀틱으로 이적했지만 정상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가 맨유에 남았더라도 전력감이 되기엔 무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2006년 여름 이적 이상에서 킨이 떠난 중원의 공백을 메우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오랜 관심을 표한 마이클 캐릭의 영입에 성공했고, 스페인 대표인 마르코스 세나와 바이에른 뮌헨의 오언 하그리브스 영입에도 근접했다. 세나와 하그리브스 건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빠졌지만 캐릭의 영입은 다소 과한 지출이라는 지적에도 좋은 영입임에 분명하다. 그는 지난 시즌에 토트넘의 돌풍을 이끌며 잉글랜드 대표로 발탁됐다. 캐릭은 수비력과 볼배급력, 슈팅력을 갖춘 중앙 미드필더로 킨과는 다른 타입의 선수지만 맨유의 중원은 풍성함을 되찾았다. 하그리브스와 세나 중 한명의 영입이 확정된다며 맨유의 중원은 다시 프리미어십의 정상급으로 올라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④ 뤼트 판 니스텔로이 -> 웨인 루니, 루이 사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난 것은 뤼트 판 니스텔로이다. 퍼거슨 감독의 열렬한 구애 끝에 2001년에 맨유에 입성, 5년간 150골을 몰아치며 맹활약을 펼쳐왔다. 그는 프리미어십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등 골잡이로서의 제 몫을 다해왔다. 하지만 베컴이 떠난 이후 그의 득점력은 다소 감소됐고, 탈장과 부상 등 건강이 위협받으면서 경기력도 하락세를 보였다. 많은 팬들은 단지 이름값으로 정상에 있는 판 니스텔로이가 지난 시즌에 많은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음을 잊은 듯하다. 그는 21골을 넣었지만 공격 작업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은 시간이 그 이상으로 많았다.

본래 전방에서 폭발적인 질주와 전진 압박을 구사하며 볼을 따내고 촌철살인의 결정력과 파괴적인 슈팅을 구사하던 판니는 지난 2005/2006 시즌에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현격히 떨어진 활동량과 스피드로 전방에서 자주 고립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의 골결정력은 여전했지만 부진과 고전이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판니스텔로이는 연일 득점포를 가동하며 앙리와 득점왕 경쟁을 펼쳤지만 퍼거슨 감독은 단순히 득점이라는 결과물보다 저조한 경기력에 집중했다. 2004년에 영입된 루니와 사아는 이러한 판니의 부진을 상쇄할 적절한 대체자였다.

판니는 부상에서 회복한 루이 사아와 주전 경쟁을 펼치게 됐다.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벤치에 앉는 생기자 판니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팀을 떠나고 싶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고, 퍼거슨 감독은 팀의 분위기를 헤치며 분란을 일으킨 판니를 좌시할 수 없었다. 판니의 득점력이 충분했을지 몰라도 판니는 다른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능력은 많이 감퇴 되어 있었다. 앙리와 루니가 득점 뿐 아니라 도움면에서도 높은 기록의 보유자라는 점에서 판니는 더이상 맨유 같은 큰 클럽의 제1 공격수로 나서기에 부족함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판니는 클럽에서 자신의 위치가 격하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맨유는 공격진에 왕성한 활동량과 폭발력을 갖춘 루니를 보유하고 있었고, 사아는 판니 보다 루니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투입될때마다 기대에 부응했다. 결국 판니는 칼링컵 결승전을 비롯해 후반기의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내며 맨유의 전력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판니라는 확실한 골잡이를 떠나보낸 맨유는 토레스와 클로제 등 공격진의 대체자를 물색하기도 했지만 영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이에 크게 게의치 않았다. 이미 루니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한 퍼거슨 감독은 사아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부상에서 돌아온 스미스와 솔샤르가 충분한 백업 요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신성 주세페 로시 역시 팀의 5번째 공격수로 잔류하면서 공격진은 충분히 모양세를 갖췄다. 호날두는 윙포워드로 적극 공격에 가담해 탁월한 득점력을 올려주는 선수다.

본 궤도에 오른 퍼거슨의 플랜

판니가 떠나고 맞은 풀럼과의 프리미어십 개막전에서 루니-사아-호날두의 삼각 편대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서로의 자리를 맞바꿔가며 쉴세없이 전진했고, 드리블했고, 패스했고, 크로스 했고, 슈팅을 시도했다. 정신없이 역동적으로 펼쳐진 공격은 더이상 전방 고립이라는 문제점을 보이지 않았다. 사아는 풀럼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했고, 자책골로 연결된 두번째 골을 땅볼 크로스로 이끌어냈으며, 루니는 2골 1도움, 호날두도 1골을 기록했다.

맨유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전성기 기량을 발휘하던 당시 `킹 뤼트` 체재로 불리운 역동적인 공격을 `킹 루니` 체재로 옮겨오면서 사아와 호날두로 공격진을 구성했다. 기동성이 떨어진 판니는 더이상 맨유의 구상에 필요하지 않았다. 맨유가 판니를 잃은 것은 손실이 아니며, 놓친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은 애호하는 이유는 그가 볼이 없을 때 펼치는 최고 수준의 움직임이 맨유의 공격진에 수많은 공간을 창출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결정을 짓는데 서투를지 몰라도 박지성은 퍼거슨 플랜의 중심에 있다. 퍼거슨이 지난 여름에 영입한 것은 고질적인 문제였던 골키퍼진의 판 데르 사르와 미드필드진의 윤활류 박지성뿐이었다. 박지성이 퍼거슨의 플랜에 절실한 존재라는 것의 반증이다.

지난 시즌 중반에 영입된 비디치는 단단한 수비를 보여줬고, 패트리스 에브라는 당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새로운 시즌의 시작과 함께 기대에 부응하는 플레이로 퍼거슨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중하고 있다.

퍼거슨 감독은 베론, 젬바-젬바, 클레베르손과 같은 영입에서 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스탐과 베컴, 킨과 판니스텔로이 등을 차례로 내보내며 리빌딩 작업을 착실하고 꾸준하게 시도해왔다. 사람들은 퍼거슨이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며 지휘봉을 놓치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는 새로운 영광을 만들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고인물을 거부하고 신선한 흐름을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퍼거슨의 작업은 성공에 근접한 모습이다.

퍼거슨은 이미 지난 시즌에 구멍난 스쿼드로도 첼시를 바짝 뒤쫓으며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2006/2007 시즌을 맞은 맨유는 최후방에서 부터 최전방까지 가득찬 스쿼드를 보유하게 됐고, 첼시의 독주를 막아설 잠재력이 충분하다.

루니를 중심으로 호날두와 사아, 박지성이 만들어낼 맨유의 역동적인 공격진과 캐릭과 스콜스, 긱스의 건재한 베테랑과 새로이 영입될 제3의 선수들이 구성할 미드필드진, 이미 프리미어십 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수비진과 판데르사르와 쿠슈차크로 구성된 빈틈없는 골키퍼 진까지.

리빌딩 작업 완료를 목전에둔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난 3년간 잃어버린 프리미어십의 타이틀을 `무적` 첼시로 부터 탈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펌글)

 

 

 

2.운동장에서

 

어제(8/22)저녁에 변단장,허감독,델피노와 함께 간단한 식사(영양탕)를 하면서 나온 이야기가

'이기는 축구'였습니다.

여러 상대팀에 따른 '변별력'이 약한 우리팀으로서는 충분한 경기경험(조직력)이 필요하고,개인별 기량차의

극복,외부선수의 영입문제에  따른 의견차,전술적인 의견등 추계대회의 참가여부 까지 심도있게 검토

하였습니다.

형편상 조직을 극대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아는 것과모른것은 천지차이가 아닐까요?

집행부는 모두에게 축구의 모든것을 보여줄 수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아무런 어려움이 없을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오 복음 20장 1-16절)

 

 

봉사 할 때에는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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