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케르
카시야스 185cm/ 70kg
레알마드리드 -


- 에드빈
판데사르 197cm/ 84kg
맨체스터 Ut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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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이케르 카시야스 | 에드빈 판데사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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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반응속도와 포지셔닝, 판단력에 있어서는 단연 세계 최고 골키퍼다. 키퍼의 순발력을 가늠하는 페널티킥의 슈퍼 세이브는 카시야스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대표팀 주전 GK로 인상적인 PK 선방 장면을 숱하게 연출했다. 키퍼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5C라 불리는 냉정함(cool), 용기(courage), 의사 전달(communication), 영리함(clever), 경쟁심(competition)을 두루 갖춘 골리이기도 하다. 카시야스의 경쟁력은 꾸준함에도 있다. 키퍼로는 파격적이게도 18살에 거함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키퍼로 올라섰다. 1999-00시즌 독일 출신의 보도 일그너의 부상으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 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며 최연소 챔스 우승 GK의 영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큰 부상이나 부침 없이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의 최후 보루로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시야스가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골리로 올라선 과정이 레알 마드리드의 그것과 닮았다는 점이다. 2002월드컵 스페인 주전 GK로 지목받았던 산티아고 카니사레스가 대회 직전 화장품 병이 발등에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낙마했다. 그 빈자리를 메운 행운의 사나이가 카시야스였다. 우연과 필연의 궤적으로 카시야스의 삶을 표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번 시즌 초반 흐름은 좋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흔들리며 덩달아 중심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의 슈퍼 세이브를 기점으로 넘버원 골리로서의 기세를 되찾았다. 유로2008 우승의 주역이기도 한 카시야스는 A매치 88경기에 출전, 수비사레타와 라울 등에 이어 스페인 선수 역대 A매치 출전 기록 4위에 올라 있는 등 대표팀에서도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
태초에(?) 피터 슈마이켈이 있었다. 그랬다. 1999년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를 차례로 제패할 때마다 맨유의 골문에는 금발의 덴마크인 슈마이켈이 있었다. 그렇게 '트레블(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맨유였지만 이와 함께 떠난 슈마이켈의 빈 자리는 너무 컸다. 이후 유럽 정상에서 점점 멀어져간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다시 도달하는 데에는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무려 9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8년 우승)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골키퍼였다. 슈마이켈이 떠난 뒤 맨유는 '매년' 골키퍼를 영입했지만 그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99년에 영입한 보스니치(←애스턴빌라)와 타이비(←伊베네치아)부터 2000년에 데려온 세계/유럽 챔피언 바르테즈(←佛AS모나코), 2001년의 로이 캐롤(←위건), 2002년의 히카르도(←西바야돌리드), 2003년의 팀 하워드(←美메트로스타스)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수 많은 골키퍼들은 퍼거슨 감독의 까다로운 눈썰미 앞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실책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2005년 여름, 풀럼의 '노장' 골키퍼 에드빈 판 데르 사르를 영입한 것이다. 당시 판 데르 사르는 한국 나이로 36세였다. 맨유가 제시한 계약기간도 '2년'에 불과했다. '일단' 1~2년이라도 안정적인 골키퍼를 고용하고 후사는 나중에 도모하자는 퍼거슨 감독의 생각은,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맨유 유니폼을 입은 채 무려 1122분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며 '제8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판 데르 사르 앞에서 잊혀진 지 오래다. 이 최고의 골키퍼는 당초 올 여름 만료 예정이던 맨유와의 계약을 최근 1년 더 연장하며 황혼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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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수원에서의 기억이다.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16강전에서 맞닥뜨렸다. 승자가 이틀 뒤 열리는 한국-이탈리아전 승자와 8강전에서 만나는 데다 아일랜드의 공격수 니얼 퀸의 은퇴 경기라 설레는 마음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모리엔테스와 로비 킨의 골. 승부는 연장전을 지나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결과는 스페인의 8강 진출이었다. 이날 히어로는 단연 카시야스였다. 후반 이안 하트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카시야스는 승부차기에서도 데이비드 코놀리와 케빈 킬반의 슈팅을 연방 막아내는 슈퍼 세이브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카시야스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8강 상대가 아일랜드로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유로2008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8강전은 카시야스에게 일종의 전환점과도 같았다. 2006월드컵의 이탈리아 우승 등으로 지안루이지 부폰에 다소나마 밀렸던 분위기에 파열음을 낸 기점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중 카모라네시의 날카로운 슈팅을 저지한 카시야스는 승부차기에서 다니엘레 데로시와 안토니오 디 나탈레의 킥을 막아내며 스페인의 44년만의 유럽선수권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그 상대가 부폰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더했다. 이날 경기의 MVP였던 카시야스는 역사상 최초로 골키퍼 출신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카시야스의 페널티킥 선방 레이스는 지난해 말 엘 클라시코 바로셀로나전에서도 나왔다. 비록 바르셀로나의 막강한 공격력에 2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사무엘 에투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등 절대 수호신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
따지자면, 판 데르 사르의 'Best Moment'는 지금이다. 12경기 동안 1,122분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판 데르 사르의 '황금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0세에 프로 데뷔전을 치른 판 데르 사르는 1995년 아약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올해의 유럽 골키퍼상'을 받으면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유벤투스에서 2년을 보냈지만 부폰(무려!)에게 밀려 32세의 나이에 잉글랜드 풀럼으로 건너 온 그는 4년간 안정된 경기력을 펼친 끝에 2005년 퍼거슨 감독의 맨유로 '영전'했다. 맨유 입단 이후 판 데르 사르는 2007년 5월 맨시티와의 더비 매치에서 PK를 막아내며 팀 승리와 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진가를 드러내더니 2007년 8월 FA커뮤니티실드(수퍼컵)에서는 첼시와의 승부차기에서 무려 세 개의 PK(피사로,램파드,라이트-필립스)를 막아내며 팀에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돋보이는, 그야말로 진정한 '베스트 모멘트'는 2008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일 것이다. 이날 그는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인 니콜라 아넬카의 슛을 막아내며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놨다. 한 가지 덧붙이면, 원래 판 데르 사르는 승부차기에 약한 GK였다. 유로96, 프랑스월드컵(98), 유로2000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이 연달아 승부차기 패배로 탈락할 때 골문을 지킨 남자가 바로 그다. 하지만, 유로2004 8강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멜베리의 PK를 막아 승리를 지킨 이후 판 데 사르는 PK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단한 노력 끝에 약점을 강점으로 치환시킨 그 순간이야말로 판 데르 사르의 진정한 베스트 모멘트가 아닐런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