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뒤에서 반주하시느라
늘 답답했을 거라 믿어요.
길다란 발판들과 2층이나 되는 건반
그리고 쉴 사이 없이 연주해야 하는 올겐 뒤의 그림자가
상큼한 가을빛에 더욱 아름답고 또 고마움으로 그려집니다.
참, 묘하지요?
연주회를 가질 때마다 '내'가 잘 해서 성공한 것 같았는데
조금만 고개를 들어보면
'나' 보다 공이 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보이니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덩어리의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 보면
얼마나 진솔했는지 처음보다 더 확연히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내리는 설악을 보면
입단한지 얼마되지 않지만
그대의 숨은 그 자리가
그처럼 가장 큰소리로 소리없이 성가대를 빛나게 했구나 하는걸 느낍니다.
감히 내 사랑이라고 말해 지휘자님이 더 놀라셨겠지만
한결같은 연주로 우리들의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해 주고,
무엇보다 성가대에서의 행복감을
그대의 손끝에서부터 느끼기에
어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할 때마다 그 귀한 것을 줄 수 있겠어요.
내 사랑, 베로니카.
가사도 잘 까먹는 내 목소리가 그래도 천상의 소리로 향하게
온 몸으로 연주해 주어요.
큰 연주 몇 차례 지내고 보니
그대의 잔잔한 숨소리가 노래였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올겐 뒤 베로니카에게 따뜻하고도 환한 은총 내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