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을 떠나보내고 (2006-07-12)

2006. 10. 3. 오전 10:08:45

글자
미국에 와서 계속 학교 주변에 살다보니 학기가 바뀔 때가 되면 늘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됩니다.  짐이 나가고 난 후 휑하게 비어버린 집, 주인의 떠나감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앉을 의자도 없고 옆에는 짐가방들이 늘어서 있는 집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일도 이젠 수도 없이 겪어 익숙해진 광경이지만 그래도 허전함과 쓸쓸함에는 익숙해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떠나보내면 늘 돌아와 내 집을 정리했습니다. 나도 결국은 이 집에서 그렇게 가방만 들고 훌쩍 떠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되새기면서 좀 잘 정리해놓고 살다가 가뿐하게 떠나보자는 생각으로 막 정리를 한 줄 알았습니다.  어제 또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집에 와서 깨달았습니다. 그게 다 공허함을 잊기 위해 공연히 멀쩡한 집구석을 뒤집어 엎는 제스추어였다는 것을요.
여자들의 우정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걸 감히 글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면서 주고 받은 은 남자들이 자랑하는 "사나이들의 우정"보다 결코 옅지 않습니다.  타국에 살면서, 친구들도 학교 동창들도 없고, 친정 엄마도 언니도 동생도 없는 이 곳에서 내가 정말 누군가가 필요할 때 서로 옆에 있어 준 아줌마들...(싱글분들께 죄송합니다만 전 결혼 하고 미국에 왔기 때문에 아줌마로 그냥 쓰겠습니다.)  힘들어 밥 숟가락도 들고 싶지 않을 때 국  한 남비를 들고 문을 두드려주신 분 , 하소연 상대가 필요할 때 차 한잔을 놓고 위로를 아끼지 않은 사람,  내 차 시동 안 걸릴 때 자기 일 제쳐 놓고 태워다 주신 분,  정말로 정말로 바쁘고 힘들어 울고 싶을 때 내 아이를 데려가 봐 주신 분...  한국에 있었으면 친정 엄마한테나 했을 부탁을 기꺼이 짊어져 주던 이웃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곳에서 그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고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분들이 떠납니다.  항상 떠남을 가슴 구석에 안고 살기에 여기서 함께 지내는 기간들이 더 소중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주변에 베풀고 웃음을 주던 마리안나가 어제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구역모임에 못  올 때에도 음식을 해 보내던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진 마리안나가 있었기에 작년 저희 구역의 밥상은 늘 푸짐했었습니다.  갑자기 떠나느라고 제대로 송별회도 못 하고 떠나서 아쉽지만, 마리안나 가족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늘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율리안나와 젬마가 조만간 또 매디슨을 떠납니다. 이번에는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