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에서 드리는 편지 4

2006. 11. 16. 오후 6:05:47

글자

교우님들, 그리고 신부님.. 잘 지내시죠?

한동안 이곳 근황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게시판 덕분에 매디슨 소식은 그럭저럭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짐작하시듯이 바빴습니다. 제 아내 이혜원 소화데레사도 새벽에 일어나 수원까지 통근버스를 타고 가서 일하고 오면 밤중입니다. 저도 시한이 있는 논문을 마무리하다보니 매일 야근이구요. 어머니께서도 저희 챙겨주시랴 낮에 운동하시랴 심심하실 겨를이 없으십니다. 매디슨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지만, 여기서의 생활은 좀더 속도감이 있습니다. 아마 매디슨에 계시다가 한국에 돌아오신 분들이 대부분 그렇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몇 가지 기억할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달에 연구원 일로 해외출장을 런던, 스톡홀름, 파리로 다녀왔는데, 함께 동행한 동료가 신자는 아니지만 오래된 성당을 좋아해서 짬나는 대로 유서깊은 성당과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미사시간에 갔을 때도 신자보다는 관광객들이 훨씬 많았고, 분류상 후자에 속했던 저는 조그만 매디슨 성당이 제게 주었던 영적 선물을 새삼 감사히 떠올리며 횡횡히 건물을 빠져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스웨덴 재경부를 방문해서 스웨덴의 우파집권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좌파든 우파는 그곳 사람들은 그들의 복지모델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언론에서 스웨덴 모델의 종언이니 뭐니 하며 떠들던 것이 생각이 나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한다고 해서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공부를 좀 싫어하거나 공부가 맞지 않았던 친구들이 많은데, 제가 내려가서 만나고 온 멋진 친구들도 대략 그렇습니다. (예전에 잠깐 활동했던 댄스그룹 ZAM의 리더 조진수도 만났습니다.) 암튼 지금 열심히 살고, 뭔가를 아직도 추구하고 공부하고 있고, 나름대로 자리도 잘 잡은 그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 때 그 친구들은 입시지상주의로 통제된 학교가 맞지 않았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도에 교육문제를 연구할 계획인데, 제 친구들이 사례연구의 특별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 가지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저희 구역에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 자주 지향을 바치던 분 - 암으로 투병중인 젊은(40대) 독신 화가 - 께서 11월 1일(All Saints' Day)에 소천하셨습니다. 처음 암을 발견했을 때 병원에서는 6-8개월 시한부라는 얘기를 가족들에게 했다는데, 그 후 2년 반 동안 정말 아름다운 투병을 했습니다. 매디슨 성당 가족들과 그분의 기억을 조금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매디슨에 있을 때 투병중인 그분과 주고받았던 메일들 중 보관되어 있던 것을 찾아서, 혼자서 오래 생활했던 고인의 흔적들을 그림 맞추기하듯 찾고 있는 유가족에게 전달했는데, 그때 함께 드렸던 편지를 아래 붙입니다.

 

매디슨 교우님들, 그리고 신부님, 수사님들과의 추억도 나중에 그렇게 소중하고 애틋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홍릉에서

김 아우구스티노 드림

 

날개 없는 천사와 나눈 편지


이 서간문들은 2006년 11월 1일 소천한 故 유인철 화백과 나눈 이메일 모음입니다. 고인이 암과 투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2004년 여름에 저는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3년째 유학 중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잠깐 한국을 방문했던 아내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고서 제가 보낸 이메일로 고인과의 짧았던 서신교환이 시작됩니다.


고인과 저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남의 어떤 카페에서 열린 사교모임에 내키지 않게 참석해 쭈볏거리던 저는 우연히 제 옆자리에 앉게 된 어떤 멋진 남자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검정색 코트에 실로 짠 무채색 목도리를 세련되게 두른 그 남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적당한 장발에 잘 생긴 얼굴, 예술가의 날카로운 눈매를 선한 웃음과 여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중화시켜 도무지 경계심을 주지 않는 묘한 매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밤샘 공부는 안 해도 미술 숙제 그리기로는 밤을 새우던 저는 이 담에 저한테 꼭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즉석에서 졸랐습니다. 아니 언제 봤다고... 언제 그의 그림 한 장이라도 본 적이 있다고...

그 자리에서 그의 승낙을 확실히 얻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약속을 잘 지키는 그가 그림을 가르쳐주지 않고 영영 가버린 걸 보면 그 때 그냥 웃기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후에 우리가 1999년 1월에 포럼21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을 때, 그는 우리 모임의 중요한 아이콘이었습니다. 모임 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참여율이 높았던 문화예술포럼의 책임자(포럼지기)로서 우리를 새롭고 다양한 문화의 바다로 안내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해에 우리가 벌였던 문화예술행사들만 살펴봐도 그의 기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모임에 새로운 얼굴들을 참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친구를 잘 사귀는 그이기도 하지만, 아마 사람들에게 우리 모임을 보여주고 싶을 만큼 포럼21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데리고 온 좋은 사람들 중에서 두 명의 여자는 나중에 두 명의 남자회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집에서 혼자 잠들기 전에 가만히 포럼21 식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본다고... 그러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고...

그와 함께한 술자리가 늦어져 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던 기억이 납니다. 화구가 여기저기 놓여있다는 것 외에는 평범해보이던 셋방에 조금은 부족한 듯 느껴지던 온기... 어쩐지 그에게 외로움은 버릴 수 없는 낡은 장롱처럼 그의 공간 한 구석을 터줏대감처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암과 싸우면서 그는 더욱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전과 같이 상냥하고 부드럽고 사려 깊었지만, 혼자서 마음속으로는 외롭고 두려워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부활의 승리를 알면서도 죽음을 앞두고서는 인간적인 번민과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던 예수를 떠올립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날개 없는 천사’로 기억합니다. 그는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로 기념되는 성스러운 축일에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는 암세포로 몸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괴로워했지만, 그것이 날개를 달기 위해 몸이 변모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우리를 보고 있을 그에게 다시 고백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사랑한 정말 예쁜 사람이었고 정말 예쁘게 살았습니다. 온유하고 인간미 넘치며 철학적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이름이 ‘유인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했던 그가 천상에서의 삶도 아름답게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2006년 11월 13일

김희삼 드림


추신: 올해 여름 한국에 돌아와서도 목소리만 들을 채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보낸 저는, 늦가을 삭풍에 쥐고 있던 고운 잎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애달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잎이 어딘가에 떨어져 거름이 되어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아래서 쉴 수 있는 큰 나무를 만들 것을 믿습니다. 그가 남긴 유작 중 빈소에 놓여있던 자작나무 그림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충견 똘똘이와 함께 살던 강원도 집이 나무 등걸에 아로새겨진 그 그림은, 고단했던 육신은 땅의 고운 거름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편지 모음을 사랑하는 고인의 가족에게 드리며, 마음 속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댓글 9

  • 2006년 11월 16일 오후 8:40

    화가분의 명복을 빕니다. 예전에 형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했던 멋진 분이 돌아가셨군요. 세상엔 아픔도 많지만, 추억으로 인해 삶은 아름다울 수 있을 듯 합니다. 건강하세요.

  • 2006년 11월 16일 오후 11:39

    형제님 글 방갑게 잘 읽었습니다. 어느 작가의 수필을 읽는듯 했어요,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구 아름답습니다..., 형제님과 가족 모두에게 평안을 빕니다.

  • 2006년 11월 17일 오전 10:56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제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됩니다. 언제나 좋은 글과 소식에 감사합니다.

  • 2006년 11월 17일 오전 11:36

    누군가에게 아쉬움과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삶을 살고 가신 것 같네요. 삶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쁨이죠. 형제님께 기쁨을 주고 떠난 그 분이

  • 2006년 11월 17일 오전 11:37

    이제는 하늘에 계신 주님곁에서 기쁘고 편안하게 사시기를 기도드릴께요

  • 2006년 11월 17일 오후 3:12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맑은 영혼을 알게해 준 아우구스티노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 2006년 11월 17일 오후 5:28

    희삼 씨 소식 참 반가워요. 어디에나 우리들의 스승은 계시는군요. 함께 살아 가며 나누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새삼스러워 집니다.

  • 2006년 11월 22일 오전 5:15

    여러가지 소식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곁을 떠난 화가분의 슬픈 소식 속에서 한편으로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따사로움의 흔적을 느낍니다...

  • 2006년 11월 27일 오전 5:34

    형제님.... 한국에서 바쁘지만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투병이란 말이 자꾸 남네요. 좋은 사람, 좋은 만남을 함께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