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과 다가섬(1224 대림 제4주간 수요일)

2014. 12. 23. 오후 11:19:23

2
글자

2014. 12. 24 대림 제4주간 수요일


루카 1,67-79 (즈카르야의 노래)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오심과 다가섬>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설렘 가득한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찬미의 노래를 듣습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 예수님에 대한 찬미이고, 둘째 부분은 자신의 아들 세례자 요한의 소명과 그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은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모아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예언자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러기에 즈카르야는 감격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을 일깨웁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다가섬’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따라서 성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억하고 찬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 다가서려는 우리의 결심과 삶 안에서의 실천을 아우릅니다. 다시 말해 성탄은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일방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주고받는 양방향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오심’과 그리스도인의 ‘다가섬’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에, 비로소 신앙생활은 참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께 다가서는 만큼, 오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히 ‘자신의 다가섬’은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오심’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어 오셨지만,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그분께 다가서려는 의지와 행동이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결코 당신을 보여주실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다가가려고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님께 다가가려는 우리를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재물에 대한 집착, 기왕이면 편하게 살려는 끝없는 욕망,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고 희생하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그릇된 이기심이, 우리가 주님께 다가가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며, 신앙의 원수들입니다. 이러한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신앙의 원수들의 손아귀에 잡혀 헤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고,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즈카르야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결한 신앙을 더럽히려는 원수들에게서, 우리의 굳건한 신앙을 알맹이 없는 한낱 빈껍데기 장식물로 전락시키려는 원수들에게서, 우리의 신앙 실천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정녕 세상의 모든 억압과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어떠한 이기적 욕심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고 순결하게, 재물과 권력의 우상을 깨뜨리려 가장 낮고 비천하게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오시는 약하신 분을 힘센 구원자요, 주님이라 고백함으로써 하느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댓글 2

  • 2014년 12월 24일 오전 7:29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오시는 주님만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되지요~~신부님의 말씀 오늘도 가슴속에 새기면서 하루를 출발합니다.

  • 2014년 12월 24일 오후 1:09

    "다가섬"의 어려움은 제 자신의 배타적인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걸림돌을 만날 때 먼저 기준을 세워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여 넘어서려 하지 않고 제가 가서 부딪히는 것이 아닌지 생각 해 봅니다.

상지종 신부님 강론

목록 전체보기 →
참 빛을 모신 작은 빛이 되시길(1225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1]14.12.25조회 90구유 : 아기 예수님을 품은 자리(1225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14.12.25조회 85오심과 다가섬(1224 대림 제4주간 수요일)[2]14.12.23조회 95그리스도인의 현실(1223 대림 제4주간 화요일)[1]14.12.23조회 92마리아의 노래에 덧붙이는 나의 찬미가(1222 대림 제4주간 월요일)[1]14.12.21조회 94하느님의 기다리심, 우리의 기다림(1221 대림 제4주일)14.12.20조회 85부르심과 응답(1220 대림 제3주간 토요일)14.12.20조회 84희망의 전달자(1219 대림 제3주간 금요일)14.12.19조회 90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1218 대림 제3주간 목요일)14.12.18조회 88하느님과 사람이 다시 하나 되어(1217 대림 제3주간 수요일)14.12.16조회 91정의와 불의(1216 대림 제3주간 화요일)14.12.16조회 87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처럼(1215 대림 제3주간 월요일)14.12.14조회 90구세주를 미리 알리는 우리가 되어요(1214 대림 제3주일)14.12.14조회 90엘리야, 세례자 요한 그리고 나(1213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4.12.13조회 90아름다운 동행(1212 대림 제2주간 금요일)14.12.12조회 93하늘나라는(1211 대림 제2주간 목요일)14.12.11조회 95멍에와 짐(1210 대림 제2주간 수요일)14.12.10조회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