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가 될 수 없는 양, 그리스도인(0710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2015. 7. 9. 오후 10: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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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15. 07. 10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태오 10,16-23 (박해를 각오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이리가 될 수 없는 양, 그리스도인>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때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께서 몸소 뽑으신 열 두 사도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애절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군침을 흘리며 노려보고 있는 이리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마리 양과 같습니다. 주인과 함께 있었더라면 이러한 두려움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이리 떼 가운데 서게 된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마리의 양은 자신이 원해서 이리 떼 가운데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보낸 것입니다. 힘없고 여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낸 이 주인은 얼핏 보면 참 매정하게 느껴집니다. 잡혀 먹힐 것을 뻔히 알면서 양을 보냈으니까요. 그러나 이리 떼로 가득한 험악한 세상을 평화 넘치는 세상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양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양들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인은 양을 보내면서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을 지라도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양을 둘러 싼 이리들이 양에게 이리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이리가 되면 잡아먹지 않겠다고, 이리가 되어 맘껏 즐겨보자고 유혹합니다. 때로는 달콤한 미끼로, 때로는 무자비한 협박으로 말입니다. 양은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이리가 되느냐? 잡아먹히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렇다고 이리가 되는 것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양이 이미 양이기를 포기하고 양을 잡아먹는 이리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명을 받아 하느님의 자리를 탐하는 온갖 우상 가득한 세상에 파견된 양입니다. 우상은 그리스도인을 유혹합니다. 자신을 따르라고, 그것이 참된 삶이요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을 동원하면서 유혹합니다. 자본, 권력, 지위, 생명을 가장한 죽음의 문화 등등 온갖 우상들이 날뛰면서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섬기라고 달려듭니다. 그리스도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 우상들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냐? 아니면 은근 슬쩍 우상에게 자기 몸을 맡기면서 적당히 살아갈 것이냐?


우상을 거부하면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이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이 판치는 세상의 변두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쫓겨남으로써 참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무수한 고통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 기대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가면서, 한술 더 떠 우상의 선전부대가 되어 우상참된 하느님이라고 외치기까지 합니다.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심정으로,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상의 늪에 허우적대고 때때로 우상과 함께 놀아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계실 예수님의 상처받은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하느님의 성령이 너를 지켜주지 않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간절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양이 이리가 될 수 없듯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코 우상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절대로 우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오늘도 이리 떼와 같은 세상 한 가운데서 예수님의 파견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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