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6. 16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마태오 5,43-48(원수를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원수 사랑>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끝까지 원수를 포기하기 말고
원수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벗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벗과 원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지 벗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고,
단지 원수는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일까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를 떠나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벗이지만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원수입니다.
벗과 원수의 차이는
나를 향한 상대방의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의 삶의 의욕을 꺾고
나의 인간 존엄성을 짓밟고
나의 사람다운 삶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비록 이해할 수 없다하더라도
비록 용서할 수 없다하더라도
비록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하더라도
그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회피하지 않는 것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
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
그들의 악의를 나의 선의로 정화시키는 것
그들의 악행을 나의 선행으로 무화시키는 것
그들 역시 존엄한 사람들임을 믿기에
그들이 누군가에게 해코지함으로써
스스로의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것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며
회개와 참회로써 새 삶을 살도록
그들을 위해 꾸준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
비록 내가 그들의 손에 죽어갈 지라도
그들이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
원수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원수가 되기를 강요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벗이 되어 주는 것이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적대자들마저 살리신
예수님을 온전히 따름으로써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