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1. 25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마르코 3,1-6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시오>
회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려고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십니다.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무관심한 뭇시선들을 피해 한쪽 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초라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새로운 기쁨과 희망을 맛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있지만, 흠을 잡아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불온한 생각에 잠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눈빛과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간절한 눈빛이 마주합니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과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생기 잃은 눈빛이 마주합니다. 예수님의 노기 띤 눈빛과 사람보다 법 규정에 얽매인 사람들의 의심과 불만 가득한 눈빛이 마주합니다. 무수한 눈빛들이 혼돈스럽고 오고가는 불안한 침묵이 이어집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이 침묵을 깨고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부르십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너라. 너의 자리는 거기가 결코 아니란다. 너에게는 모든 이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단다. 누가 너더러 그곳에 있으라고 했느냐. 너의 오그라든 손이 보기 싫다고 없어지라고 했느냐. 누가 너더러 아무 시선 없는 곳에 숨으라고 했느냐. 너의 오그라든 손이 보기 싫어 스스로 숨었느냐. 네가 있어야 할 곳, 내가 초대하는 곳으로 기쁘게 나오너라.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마라. 더 이상 다른 이들의 시선에 무릎 꿇지 마라. 어서 지체하지 말고 가운데로 나오너라.”
예수님의 부르심은 숨죽어 지내야 했던 이들과 누군가를 숨죽이게 했던 이들 모두에게 한 줄기 빛과 희망입니다. 숨죽어 지내야 했던 이들과 숨죽이게 했던 이들 모두, 무엇이 어둠인지, 무엇이 희망 없는 삶인지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절망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문득 지난 시절 참으로 가슴 쓰라리게 담아 놓았던 이야기가 다시 마음을 저며 옵니다.
“이렇게 사는 저희 모습이 그렇게도 눈에 거슬립니까? 제대로 갖추어 놓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저희가 보기 싫습니까? 이런 저희를 외국인이 볼까봐 창피하고 두렵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짓밟습니까? 이렇게 내쫓지 말고, 차라리 우리 동네에 높이 담을 두르십시오. 밖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말입니다.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쳐놓은 그 담벼락 안에서 우리 오순도순 살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곳에서 나가라는 말만은 말아주십시오.”
88올림픽을 몇 해 앞두고 도시미관을 헤친다고 빈민지역을 무작정 철거할 당시의 어느 이름 모를 철거민의 피맺힌 절규입니다. 그분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계신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숨어 지낼 것만을 강요당하며 오늘은 이리로 내일은 저리로 쫓겨 가고, 갈 때까지 가다가 갈 곳이 없으면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현실을 어두웠던 과거의 것만으로 삼을 수 없음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오늘입니다. 눈에 거슬리면 없애버리고, 입장이 다르면 적으로 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난하고 나서는 오만한 편의주의가 아름다운 인간 세상을 함께 살 수 없는 더러운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살 맛 나는 곳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 이제 언제부터인가 한편으로 밀어놓았던 소중한 이들을 다시금 삶의 중심 자리로 초대해야 합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십시오! 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오히려 가차 없이 내치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외쳐야 합니다. “당장 그 죽음의 굿판을 치워버리시오! 당신들의 정갈한 겉모습 속에 담긴 추악함 싹 쓸어버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오시오!” 라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