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더러운 영,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0113 연중 제1주간 화요일)

2015. 1. 13. 오후 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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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15. 01. 13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마르코 1,21ㄴ-28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예수님과 더러운 영,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당신의 첫 번째 적대자를 만나십니다. 사람 속에서 활동하면서 사람을 소외시키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더러운 영이 바로 그 적대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더러운 영을 가차 없이 쫓아내심으로써 사람을 온전히 자유롭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바로 이 기적이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입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로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행위는 사람에게 자유를 선사하신 하느님께 대한 정면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다양한 얼굴을 한 더러운 영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연대와 참여를 호소하는 집회와 결사를 불법적으로 억압하는 것, 불의한 권력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언론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 모든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권력을 소수가 독점하고 다수의 국민들을 두려움 가득한 침묵 속으로 몰고 가는 것, 남성과 여성의 차별, 노동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내국인과 이주민의 차별 등 이 땅에서 당연시되는 여러 차별들,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고유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길들여져야 하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것, 이 모두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러운 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면 과한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더러운 영의 활동들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더러운 영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더러운 영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더러운 영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입니다.


만약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면,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차라리 예수님을 모른다고, 아니 예수님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죄 없는 생명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비록 하느님께서 빚으신 피조세계에 경탄한다 해도,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려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탓 없이 일자리 보금자리 빼앗겨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생명을 내던지는 벗들의 피눈물을 씻어주지 못한다면, 비록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해도, 정의와 해방을 선포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속에 깃든 신성함과 거룩함에 깃든 일상성을 외면하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의 여정을 단지 정해진 시간과 좁은 공간 안에만 놓는다면, 비록 매일의 기도를 통해 삶의 한 부분을 거룩하게 보듬는다 해도, 온 세상 모든 이에게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아주시려 오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을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당당히 고백하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며,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거부한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로부터 쫓겨났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 하고, 오직 예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따르며 예수님과 맺어진 관계를 이어감으로써만 온전히 증명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때로는 움켜쥐고 때로는 내던지는, 살면서 하나쯤 지니면 좋을 폼 나는 장식품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임을, 머리와 입이 아니라 삶으로 묵묵히 드러내야 합니다.

댓글 1

  • 2015년 1월 14일 오후 9:02

    살아가면서 매 순간 나쁜 영에 휘둘려 주님의 품을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주님께 청해 봅니다. 뉘우침 속에서 주님의 따뜻한 품안의 행복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지종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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