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1. 06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마르코 6,34-44 (오천명을 먹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사랑은 단순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서 하늘나라라는 새 세상이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아주 작은 공동체라 하더라도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나 질서가 필요하듯이, 하느님께서 주신 새 세상 역시 이러한 규칙과 질서가 있어야만 보다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새 세상을 이루어 가는 규칙과 질서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늘나라에 살기 위한 법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세상의 법처럼 수없이 많고 복잡한 법조문을 가지고 있는 법이 아닙니다.
사랑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단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법입니다. 배고프고 지친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 먹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과 함께 있고 이들에게 무엇인가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내게 먹을 것이 남아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형제가 굶주리고 있다면,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누고 싶어도 나눌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지요. 그러기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조금은 당황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웃에게 무엇을 나눌 만큼 충분한 부자는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습니다. 재벌 그룹의 회장이라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더 돈을 벌면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벌더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물량이나 수량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랑은 가난한 이웃들을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흩어버리는 약삭빠른 잔꾀가 아니라, 비록 커다란 도움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품에 안는 ‘미련함’입니다. 사랑은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을 꼼꼼히 계산하는 치밀함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다하더라도 어떻게든 나누려고 애쓰는 ‘무모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사람은 돈 많은 다른 누구도 아니요, 앞으로 가진 것이 많아진 후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입니다.
나누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사실 나누어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나누려 할 뿐이겠지요. 자신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욕심 채우기 말이지요.
참된 나눔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기 전에 그저 나눌 수 있기를,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