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7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20,2-8 (부활하시다)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도>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낚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0-11). 요한은 친형이자 같이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이에 두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을 때(마르 5,37; 루카 8,51),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을 때(마태 17,1; 마르 9,2; 루카 9,28), 그리고 최후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7; 마르 14,33)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형제의 격렬한 성격 때문에 이들에게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동네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자, 하늘에 불을 내려 냉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을 태워 버리도록 스승이신 예수님께 청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루카 9,51-56)
그런데 제4복음서에서 요한은 스스로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답게, 최후 만찬 때에 예수님의 품에 기대듯 앉아 있었고, 어느 누구도 감히 묻기 어려운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가 누구인지 여쭈어 보기도 했습니다(요한 13,23-24).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에 응답하듯,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곁에 있었고, 예수님의 유언을 받들어 성모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고(요한 19,25-27), 오늘 복음에서 들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보다 앞서 달려갔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 발현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요한 21,7).
또한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도 요한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맡기셨던 사명을 열정적으로 수행하게끔 이끌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다가 앉은뱅이를 고쳐주는 현장에 있었고(사도 3,1-10),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다가 구금되어, 최고 의회에서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설교하였습니다(사도 4,1-22). 또한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에 파견되어 안수와 기도를 통해 새로 영세한 신자들에게 성령의 은총을 베풀었으며(사도 8,14-17),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중추적 인물이었습니다(갈라 2,9).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요한’ 참조]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람과 교회를 사랑으로 돌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받는 우리,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의 뜻대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이 세상에 온 첫날이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세상 전부였습니다. 그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며 하느님께서는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꺼져 버리는 죄 없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한다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넘치게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한 겹 두 겹 삶의 연륜이 쌓여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고귀한 삶의 여정 안에는 기쁨과 희망뿐만 아니라 슬픔과 절망도 함께 녹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이야!’ 라며 감탄했을 것이고, 때로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을 것을!’ 이라며 가슴을 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랑받기만을 원할 때 세상은 우리에게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없이 사랑할 때에는 삶은 더없이 아름답게 빛났을 것입니다. 비록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내던지는 쓰라린 고통이 있었다 해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사랑이 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주님께서 이 세상에 파견하신 사람, 곧 주님의 사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뵙고픈 마음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도 요한처럼,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빛나는 첫자리를 베드로에게 아낌없이 내어놓은 주님의 사랑받던 제자처럼, 벗들을 향한 겸손과 배려 가득한 사랑을 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