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주교회의 만남 연설 전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강당 2014년 8월14일)

2014. 8. 19. 오후 1: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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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주교회의 만남 연설 전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강당 2014년 8월14일)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큰 사랑으로 인사 드립니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으로 해 주신 형제적인 환영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교회의 활기찬 삶을 직접 보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복입니다. 목자로서 여러분은 주님의 양 떼를 지키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지키는 것은 특별히 주교에게 맡겨진 임무의 하나로, 곧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교직을 받은 형제로서, 이 나라에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임무의 두 가지 중심 측면을 성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의 시복은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으로 이 땅에서 은총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그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합니다.

복음이 뿌려진 한국 땅이 얼마나 비옥했고 신앙의 선조들이 전해 준 유산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는, 오늘날 활기찬 본당 사목구와 교회 단체들의 번창에서, 탄탄한 교리교육 과정에서, 젊은이들과 가톨릭 학교, 신학교와 대학교에 대한 사목적 관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가의 정신적 문화적 생활에 대한 역할과 선교에 관한 힘찬 열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회는 여러분이 세계에 파견한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이 간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기억으로부터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듯이, 한국 교회의 삶과 사명은 궁극적으로 외적, 양적, 제도적인 잣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복음의 빛과 그 부르심에 비추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합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란, 성장시켜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1코린 3,6 참조) 깨닫고, 동시에 성장은 과거처럼 현재에도 고난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일하는 그러한 노고의 열매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순교자들과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과거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길을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적 진전을 가로막거나 실제로 멈추게 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을 넘어서, 여러분은 또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복음이 가져다 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시킨 그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이 희망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은 여러분의 성화 직무를 통하여 이 희망을 제시하십시오. 이 성화 직무는 신자들을 전례와 성사 안에 있는 은총의 샘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는(필리 3,14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덕의 불꽃, 형제적 사랑의 불꽃, 선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게 함으로써 이 희망을 지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여러분이 언제나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를 것을 부탁합니다. 날마다 일하고 성덕을 추구하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들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고, 저의 사랑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선교하는 교회,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교회, 특히 이 시대 사회의 변두리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라는 도전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를 받아들이고 그 지체 하나 하나와 동화되는 데에 “영적인 맛”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68항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인들의 기억과 지혜와 경험,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망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지킴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하여 젊은이들의 교육을 특별히 배려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대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모든 단계의 가톨릭 학교가 지닌 근본 사명의 수행을 뒷받침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젊은이들의 정신과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또 좋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안에서 자라나서, 그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정직한 시민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 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지만 ―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얼굴일 때에, 그분의 신비체의 친교 안에서 언제나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에 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끌려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 우선하여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1,17 참조)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93-97항 참조).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여러분의 사명에 관한 이러한 묵상으로, 저는 한국 신자들의 일치와 성덕과 열정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기억과 희망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를 향해 이끌어 갑니다. 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은총의 힘에 의지하십시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3,3).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사목과 보호에 맡겨진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저의 교황 강복을 드립니다.

주교회의 사무처 번역 /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교회의 연설 중 빠진 부분, 8번째 단락 전체입니다.

"저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자렛의 회당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직무를 처음 시작하는 자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장차 올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심판을 받을지 드러내 밝히실 때, 여기에서도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봅니다.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에 특정 교회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크게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어떤 사례들에서 이런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되어서 그런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는 낯선 일도 아닙니다. 이 유혹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코린토 신자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1코린 11,17)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이 문제를 더욱 강하고 명확하게 제기했습니다. (야고 2,1-7)

그는 이들 부요(부유)한 공동체들, 부요한 사람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누리는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그들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꺼리게끔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번영의 유혹입니다. 저는 여러분 주교들께서 좋은 일들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여러분을 훈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확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한 형제로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요한 이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그렇게 된다면) 그 교회는 아마도 "번영의 신학"을 펼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별 쓸모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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