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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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비노(Gabinus)
성 크리스풀루스(Crispulus)
축일 5월 30일
성 가비누스(또는 가비노)와
성
크리스풀루스(Crispulus)는 사르데냐(Sardegna)의
최초의 순교자들이다. 그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신들이 복음을
선포하던 토레스(Torres)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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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카 키르비(Luke Kirby)
축일 5월 30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요크셔(Yorkshire)의
베데일 태생인 성 루카 키르비(Lucas Kirby,
또는 루가 키르비)는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1576년에 두에(Douai)로 가서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그 후 다시 로마(Rome)로 가서
공부한
뒤에 1577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활동하지도 못한 채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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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르도 뉴포트(Richard
Newport)
축일 5월 30일
리카르두스 뉴포트(Richardus Newport, 또는 리카르도)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중부 노샘프턴(Northampton)
출신의 교구 사제이며, 로마(Rome)에서 재교육을 받은
후
잉글랜드에서 성공적으로 사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차례나 투옥되었고 또 두 번이나 추방되었다.
그는 런던의 성공회
주교 앞으로 끌려갔으나 끝까지
가톨릭을 옹호하여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1612년 5월 30일에 타이번(Tyburn)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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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델지실로(Madelgisilus)
축일 5월 30일
성 마델지실루스(또는 마델지실로)는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성 푸르세우스(Furseus)와 함께 영국으로
그 다음에는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선교하였다.
그의 스승이 서거한
뒤에 그는 생리퀴에(Saint-Riquier)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고, 동료들로부터 지나친
공경을 받는 것이 불편하여 오티에
강의 몬스틀렛산의
은둔소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관상생활에 전념하던
중에, 영국인 은수자 불간의 방문으로 이 두 사람의
우정이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의 유해는 생리퀴에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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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
성녀 엠멜리아(Emmelia)
축일 5월 30일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와
성녀 엠멜리아(Emmelia)는 성 대 바실리우스(1월 2일),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
세바스테(Sebaste)의 성 베드로(Petrus, 1월 9일)
그리고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부모이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추방되었다가 후에 그들이
살던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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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스타노(Walstan)
축일 5월 30일
성 발스타누스(Walstanus, 또는 발스타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노리치
근교 바우버(Bawbough)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부친 베네딕투스와 모친 블리다의 좋은 표양을
받고
자람으로써 그의 앞날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
12세 때에 이미 그는 유산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테버햄(Taverham)에서 하인
생활을 하였다.
그는 애덕이 지극하여 자기의 음식이나 신,
옷가지들을 항상 걸인에게 주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받는
세경조차 보속이 정신으로 남에게 주었다.
그는 독신서원을 발했으나 수도원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일하던 목장에서
선종했는데,
잉글랜드의 하인들은 그의 무덤을 순례하고
큰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월스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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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쿠스(또는 시코 Sycus)
성 팔라티누스(Palatinus)
축일 5월 30일
성 시쿠스(또는 시코)와 성
팔라티누스(Palatinus)는
시리아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순교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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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5월 30일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아리우스주의에 빠졌다가 개종하였고, 668년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파비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교구를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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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Andrew)
축일 5월 30일
안드레아는 희랍어의 '용기'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자답다'란
뜻이다.
안드레아(Andreas)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피스토이아의 프란치 보카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뛰어난 설교가이던 그는
1378년에 고향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23년 동안이나 교구를 지혜롭게
다스렸는데,
주로 교회를 재건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사업에
힘을 쏟았다. 그러므로 주교의 직책을 수행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능한 한
규칙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임종하기 일 년 전에 주교직을 사임하고
수도원에서
죽음을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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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 베르토니(James Bertoni)
축일 5월 30일
이탈리아 파엔차 출신인 야고보
베르토니
(Jacobus Bertoni)는 성모의 종 수도회에서 서약을 할
즈음에 부친의 중병으로 연기하였다가, 몇 년 뒤에
서약하여 가장 훌륭한 수도자의 모습을 살았던 분이다.
그는 죄를 철저히 미워하여 매일같이 고해성사를 본
사람으로 유명하다.
외관상으로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매우 여위었다.
사제로 서품된 뒤에 그는 수도원내의 여러 직책을 맡아
모범적으로
수행하다가, 39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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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엑스수페란시오(Exsuperantius)
축일 5월 30일
이탈리아 라벤나의 대주교이던 성 우르수스(Ursus)의
후임자인 성 엑스수페란티우스(또는 엑스수페란시오)는
교구민들의 현세적, 영신적 이익을 위하여 일생을
불사른 분이다. 그는
호노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살았는데, 스틸리코족이 라벤나를 침략했을 때 그가
직접 군인들을 이끌고 나가 이 도시를 방어하였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주교직에 있으면서 위대한
사목자로 추앙받다가 418년에 운명하였으며,
유해는 지금 라벤나 대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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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윌리엄
스콧(William Scott)
축일 5월 30일
윌리엄 스콧은 영국 잉글랜드(England)
치그웰(Chigwell) 출신으로서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홀에서 공부했는데, 이 대학에서 가톨릭 문학 서적을
읽다가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해외로 나가서
성 파쿤두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사제가 된 뒤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기 자신을 가톨릭으로 인도해 준 성 요한 로버츠
(Joannes Roberts)를 보았는데, 이때 성 요한은
형리들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그 후 꼭 3일 뒤에 체포되었다. 그 후 그는
두 차례나 추방되었으나 다시
돌아옴으로써 결국은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빌리암 스콧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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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탄(Walstan)
축일 :
5월 30일
성 월스탄은 바버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부친 베네딕또와
모친 블리다의 좋은 표양을 받고
자람으로써
그의 앞날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
12세 때에 이미 그는 유산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테버햄에서 하인 생활을
하였다.
그느 애덕이 지극하여 자기의 음식이나 신,
옷가지 들을 걸인에게 항상 주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받는 세경조차
보속이
정신으로 남에게 주었다. 그는 독신서원을
발했으나 수도원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일하던
목장에서
선종했는데, 잉글랜드의 하인들은 그의
무덤을 순례하고 큰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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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사악(Isaac)
축일 5월 30일
이사악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그에게 웃으시다'란
뜻이다.
아리우스파(Arianism)의 황제인 발렌스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이사악이란 은수자가 자기 은둔소를 떠나
이에 항의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래서 성 이사악은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수차례에
걸쳐서 가톨릭에 대한 박해의 중지를
호소하고
경고하였다. 만일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 재앙이
내린다고도 하였다. 황제는 한 은수자의 이런 경고를
비웃으며 그가
이 도시를 벗어나면 가까운 수렁에
빠트려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이를 모면하고 또 다시
예언의 말을
하다가 결국은 투옥되었다.
그 얼마 뒤에 이사악의 예언대로 왕은 전투에서
참패하여 죽었다. 이때부터 그를 위대한 수도자로
또 예언자로 공경하였다. 그는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도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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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잔 다르크(또는 요한나 아르크
Jeanne d’Arc)
축일 5월 30일
일명 오를레앙(Orleans)의 처녀로 불리는
성녀 잔
다르크(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Arcensis)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Champagne)
근처에 있는
동레미(Domremy)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농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시기는 백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고, 당시 동레미는 영국군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했던 그녀는 1425년
13세가 될 무렵에
대천사 미카엘이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와
마르가리타(Margaret)와 함께 나타나 부친의 집을
떠나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을 찾아가고 나아가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군대를 몰아내라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 ‘음성’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순결
서약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 5월에 그녀는 샤를 7세(Charles VII)를 도와
부르고뉴(Bourgogne)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영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오를레앙 지역을 탈환하고,
내전으로
분열된 프랑스를 국왕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샤를
7세가
보쿨뢰르(Vaucouleurs)에 파견한 장군을 찾아가
프랑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언대로 샤를 7세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1428년 10월 12일
그의 거점 지역인
오를레앙이 포위되었다. 1429년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영국군에 의해 패배하자
그녀는
3월 시농(Chinon)에 피신해 있던 샤를 7세를
찾아갔다. 샤를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군사 작전에 나서기 전 푸아티에(Poitiers)로
가서 주교와 학자들 앞에서
최종적인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음성’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그 ‘음성’은
사실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주장에서 이단이나
미신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하느님이 파견한
예언자이자 투사로
알려졌고, 그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흰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1429년 5월
7일
오를레앙에 입성하고 5월 8일에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1429년 7월 17일 샤를 7세는 랭스(Reims)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1430년 4월에 위험에 빠진 콩피에뉴
(Compiegne)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이 들은 계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한 결과,
1456년 7월 잔 다르크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그녀의
명예 역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는 1909년 4월 18일에야 비로소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
(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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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르디난도 3세(Ferdinand
III)
축일 5월 30일
중세 후기 에스파냐 북서부에 있던 레온 왕국
(Kingdom of Leun)의 왕
알폰소 9세(Alfonso IX)와
카스티야의 알폰소 3세의 장녀인 베렌가리아
(Berengaria)의 아들인 성
페르디난도(Ferdinandus)는
살라망카(Salamanca) 교외에서 태어나서 18세 때에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되었다.
또 그는 1219년에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국왕 필립의 딸인 베아트릭스(Beatrix)와 결혼하였고,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레온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재임 20년 동안 늘 무어인들과 싸웠으며
우베다(Ubeda), 코르도바(Curdoba), 카디스(Cadiz)
그리고 끝내는 세비야(Sevilla)에서까지 그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여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통치하여
뛰어난 왕으로
칭송받았으며 두 나라 간의
내적 평화를 이룩하였다.
그는 시메네스 대주교를 재상으로 모셨고,
1243년에는
살라망카에 대학교를 세웠으며,
부르고스 대성당(Burgos Cathedral)을 재건하고,
세비야의 회교 사원을 성당으로 개조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 아내 베아트릭스가
죽고 난 뒤에 퐁티외의 요안나(Joanna)와 재혼하였다.
그의 장례식
때에 그에게 프란치스코의 작은 형제회의
수도복이 입혀졌고, 세비야 대성당에 안장되어
국민들의 공경을 받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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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 1세(Felix I)
축일 5월 30일
성 펠릭스는 로마인이며 그의 부친이 콘스탄티우스
(Constantius)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269년 1월 5일에 교황 디오니시우스
(Dionysius)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고,
카타콤바의 순교자 묘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도록
명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는 로마 순교록에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5월 30일 오늘의 성인♡
2016. 5. 27. 오전 7:19:20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