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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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눌포(Ranulphus)
축일 5월 27일
성 라눌푸스(또는 라눌포)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주교였던 성
하둘푸스(Hadulphus)의 아버지로
아라스 근교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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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스티투타(Restituta)
축일 5월 27일
성녀 레스티투타는 로마(Rome)에 살던 동정녀인데,
주님의 명을 받고 한 천사의 인도로 소라에 갔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는 한 청년과 그 청년의 어머니와 39명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그녀의 눈부신 활동으로
개종자들이 생긴다는 보고를 받은 집정관 아가시우스는
그녀를 투옥시키고, 그들의 신상에 희생물을
드리기를
거부하자 지하 감옥에 처넣었다.
그녀는 7일 동안 음식과 물도 없이 굶주렸는데,
맨 마지막 날에 주님의 천사가
발현하여 쇠사슬을
풀어주고 상처를 낫게 해주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잊게 하였다. 이 기적으로 그녀의 간수들이
개종하였다.
그녀는 참수되었는데, 형리들은 그녀의 목을
곧 리리 강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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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나셀라(Monacella)
축일 5월 27일
멜란젤라(Melangella)로도 불리는 성녀 모나셀라의
부친은 아일랜드의 왕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결혼
강요를 뿌리치고 웨일스 중동부의 포이스(Powys)
지방으로 도주하여 15년 동안이나 하느님만 의지하며
숨은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포이스의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기도하고 있는 성녀 모나셀라가 있는 곳으로 토끼를
추격해갔다. 그 토끼는 그녀의 옷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왕자는
성녀를 위해
'영원한 피난처와 거룩한 장소'를 제공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곳에서 37년을 지내면서 큰 공동체로
발전했을 때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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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브루노(Bruno)
축일 5월 27일
오스트리아 남부 케른텐(Kernten)의 공작인 콘라드의
아들로 태어난 성 브루노는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의
조카로서 삼촌을 본받기 위하여 브루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1033년에 뷔르츠부르크의 주교가
된 후 11년 동안
성공적으로 교구를 인도하였다.
그는 자신의 유산 전부를 성 킬리아누스(Chilianus)
대성당 건축에
기부하였다. 지혜롭고도 학식이 풍부했던
그는 두 황제의 고문을 비롯하여 성서 주해서와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 아타나시우스 신경
(Symbolum Athanasianum) 등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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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e)
축일 5월 27일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로마(Rome) 태생으로
로마의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으로 일하다가, 596년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가 영국에 복음을
전하도록 40명의
수도자를 파견할 때 그 일원으로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597년에 켄트에 도착하여, 이미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에텔베르트(Ethelbert) 왕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품을 받기 위하여 프랑스로
갔다가, 캔터베리의 주교로 부임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탄생시켰다. 그는 왕이 하사한 땅 위에 성당과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웠으나, 브리튼의 켈트(Celtic)
전례를 고수하려는 주교들이 로마의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여생을 켄트에서 보내면서 런던과 로체스터
(Rochester) 주교좌를 설정하였다.
그는 캔터베리의 첫 번째
대주교이자 ‘영국의 사도’로
추앙받는다. 오스틴(Austi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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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604년)
축일 : 5월 27일
597년에 약 40명의 수사들이 조그만
무리를 이루어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를 떠났다.
이 무리를 이끈 사람은 로마에 있는 그들
수도원의 원장인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들이 겨우 프랑스의 한 지방인 골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앵글로 색슨족의
포악함과 영국 운하의 믿을 수
없는
물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우구스티누그는 로마로 되돌아가서 그들을
파견한 대그레고리오 교황을 만났는데
그것은 그들의 공포가 근거가 없는 것임을
교황에게 확인받고자 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선교단은 다시 출발하여
이번에는 운하를 건너서 에텔버르트 왕이
통치하는 켄트 지역에 상륙했는데
이 왕은 그리스도인 왕비와 결혼한
이방인이었다. 에텔버르트는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고 캔터베리에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그 해가
다 가기
전인 597년 성령 강림 주일에
그 자신이 세례를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프랑스에서 주교로 성성된 후
캔터베리로
돌아와 그곳에 자신의
주교좌를 세웠다. 그는 1070년에 준공되어
오늘날까지 서 있는 현재의 대성당 자리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신앙이 차츰
전파되어감에 따라 다른 주교좌들이
런던과 로체스터에 설립되었다.
선교 사업은 때때로 지지부진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도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앵글로색슨족 그리스도인들과
앵글로 색슨족의 침입에 의하여 서부
잉글랜드로 쫓겨간 브리튼 원주민
그리스도인들을 화해시키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브리튼족이 로마와는
다른 몇 가지 켈트 관습을 포기하게 하는
것도 실패했고 그들의 쓰라림을 참고
자기를 도와서 정복자들인 앵글로색슨족을
복음화하자는 권고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며 대그레고리오 교황이 제시한
선교 원칙들-당시로서는 상당히 계몽된-을
깊이 유념했다. 그것은 이방인의 성전과
관습을 파괴하기보다는 정화하고,
이교 예식과 축제를 크리스천 축제로 바꾸며,
가능한 한 지방 관습을 지속시키라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604년에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영국에 도착한지 7년이란 짧은 시일에
이룩한 제한된 성공은 결국 영국의
회개에 있어서 장기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참으로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영국의 사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설명 :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매우 인간적인 성인으로 부각된다.
그는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처럼
신경 쇠약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면 그의 첫번째 영국행은
크게 우회하여 로마로 되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실수를 했으며
브리튼의
그리스도인들과 화평을 맺으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그는 때때로 자기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더
큰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하여
로마에 편지를 써 보냈다.
그는 심지어 그레고리오 교황으로부터
자존심에 대한 완곡한 경고를
듣기까지 했다.
교황은 그에게 "최소한으로 두려워하고
주어진 놀라운 일들을 받아들일 것이며,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연약한
마음이
부풀어오르게 되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부분적인 성공만이라도 받아들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내심은 오늘날의
사도들과 개척자들에게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투쟁하며 점진적인 성취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인용 :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대그레고리오 교황은 이렇게 썼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한걸음씩 올라가야지 뛰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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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트로피오(Eutropius)
축일 5월 27일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 출신인 성
에우트로피우스
(또는 에우트로피오)는 젊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였으나
결혼 후에는 새 사람이 되었다. 아내가 죽은 뒤에
그는
그 지방의 주교인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에
의해 성직자가 되었는데, 그의 개종은 흔히 하느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다고들 말한다.
오랑주의 주교 유스투스(Justus)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후임자로 뽑혀 열심히 사목하였다.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는
그만큼 뛰어난 성인은 당대에 없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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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오(Julius)
축일
5월 27일
성 율리우스(또는 율리오)는 로마군의 원로급 군인이었다.
그러나 일단의 동료들과 함께 불가리아의
실리스트리아
(Silistria) 교외인 모이시아(Moesia)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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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산즈(peter
sanz)
축일: 5월 27일
1747년과 1748년 사이에 중국의 푸키엔 지방에서는
다섯 분의 도미니칸
사제들이 순교 하였다.
그분들의 이름은 베드로 마르띠즈 산즈,
프란치스꼬 세라노, 요아킴 로요, 요한 알코버
그리고
프란치스꼬 디아스이다.
이 다섯분의 스페인 선교사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베드로 산즈는 카탈로니아의
아스꼬 출신으로 1714년에 중국에 입국하여 활동했고,
1730년에는
모리까스뜨로의 주교로서 선교단의
책임자였다. 성 베드로는 순교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느님의 법을 위하여 죽는게
기쁘지 않습니까?" 그후 그는 참수치명하였다.
♡5월 27일 오늘의 성인♡
2016. 5. 27. 오전 6: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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