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오늘의 성인♡

2016. 4. 16. 오전 10:46:18

글자

♡4월 1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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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리스투스 또는갈리스토(Callistus)

성 카리시우스(Charisius)

축일 4월 16일 

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와
성 카리시우스(Charisius)를 비롯한 9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코린토스(Corinthos)에서 바다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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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드로고(Drogo)

축일 4월 16일 

드루온으로도 알려져 있는 성 드로고는 플란더즈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태어나서부터 고아로 자랐다.
18세부터 그는 여러 성소를 방문하는 순회 통회자가
되어 순례하였다. 그런 다음에 드루고는
세부르그에서 6년 동안 목동으로 생활하였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의 성덕을 높이 받들고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하였다. 그는 또 다시 순례의 길에
올랐고, 마침내 세부르그에서 죽을 때까지 거의
40년 동안을 은수자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목동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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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옵타투스(Optatus),

성 루페르쿠스 또는 루페르코(Lupercus)

성 수케수스(Successus),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녀 율리아(Julia),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프론토(Fronto),

성 펠릭스(Felix),

성 체칠리아누스(Caecilianus),

성 에벤티우스(Eventius),

성 프리미티부스(Primitivus),

성 아포데미우스(Apodemi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4명

축일 4월 16일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지방장관
다키아누스가 다스릴 때 에스파냐의 사라고사에서
18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성 옵타투스(Optatus), 성 루페르쿠스(또는 루페르코),
성 수케수스(Successus),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녀 율리아(Julia),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프론토(Fronto),
성 펠릭스(Felix), 성 체칠리아누스(Caecilianus),
성 에벤티우스(Eventius),
성 프리미티부스(Primitivus),
성 아포데미우스(Apodemius) 그리고
4명의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라고사에 잠시 살았던 성 프루덴티우스
(Prudentius, 4월 6일)는 후에 그들의 순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1389년 사라고사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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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뇨(Magnus)

축일 4월 16일 

오크니 섬나라 왕인 성 마그누스(또는 마뇨)는
부친으로부터 열렬한 신앙을 물려받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일랜드와의 전투를 싫어하였다.
그러던 차에 웨일스(Wales) 사람들이 침략하여
체포되었으나 감시의 소홀을 틈타서 바다로
뛰어내렸고, 스코틀랜드의 말콤 1세의 궁에
당도하여 환영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지난날의 죄를 통회하며 살다가,
결국은 아일랜드인의 침략 때 살해당하였다.
그는 비록 정치적 이유 때문에 살해되었지만
그의 신심과 교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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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
(Mary-Bernadette Soubirous)

축일 4월 16일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
(Maria-Bernardette Soubirous)는 1844년 1월 7일
루르드에서 가난한 방앗간 주인인 프랑수아의
여섯 아이 중 맏딸로 태어났다. 14세 때의 그녀는
번민하는 듯한 인상에다가 보통보다 작은 소녀로서
민감하나 쾌활한 기질이 있었으며.
다소 발육이 늦은 듯했다고 한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까지, 그녀는 루르드의
가브(Gave) 강변에 있는 마사비엘르 바위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8 차례에 걸쳐 그녀는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였다.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리아 베르나데트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부인’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도 듣지 못하였으나. 무슨 혼란이나
정신적인 이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발현이 있고난 다음부터 거짓 환시가
유행병처럼 번졌으나, 교회 당국은 그녀의 체험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의심 많은 불신자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을 영웅적인 용기와 품위로써 물리쳤다.
1866년에 그녀는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오?” 이때 그녀의 대답은
“아픈 일”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35세에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는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리아 베르나데트가 시성된 것은
그녀가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겸허한 단순성과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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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Benedict Joseph Labre)

축일 4월 16일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
(Benedictus Josephus Labre, 또는 베네딕토)는
부유한 상인의 15자녀 가운데 맏이로 불로네
근교에서 태어났다.
1770-1776년 사이에 그는 수차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신중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로마(Rome)의 순례 길에 나섰는데
맨발로 구걸하면서 기도 중에 걸어갔다.
그로부터 3-4년 동안 그는 서유럽의 성지
이곳저곳을 순례했는데, 이탈리아의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그리고 바리(Bari),
스위스의 아인지델른(Einsiedeln),
프랑스의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등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어디를 가나 항상 맨발로 여행하였고,
노천이나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으며 옷은
누더기였고, 몸은 더러웠으며 음식은
문전걸식하였고, 돈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말 수는 적었으나 기도는 많았으며,
다른 사람들의 냉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74년부터 그는 로마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로 지냈고, 밤에는
콜로세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건강을 해쳤기
때문에 걸인 수용소를 찾을 형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성당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진 후
어느 푸주한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로마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높은 성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1881년 그는 그들의 성인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성 베네딕투스 라브르는 서방 교회보다 동방 교회에
더 많이 알려진 수덕적인 성소를 받은 분이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된
그리스의 살로이와 러시아의 유로디비에 견줄만한
위대한 성덕을 쌓았다.
그는 또한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의 전파자였다.
그는 1860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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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빌리암(William)

축일 4월 16일 

빌리암 그노피(William Gnoffi)는
이탈리아 팔레르모(Palermo) 근교 폴리치 출신으로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근방에서 한동안
은수자로 살다가 걸식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여인의 끈질긴 유혹에 휘말려서
수도원을 떠나 세속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끊임없이 타올랐다고 한다. 그런 고민에 빠진
그에게 하느님의 계시가 내렸다. 그 후 그는
시칠리아(Sicilia) 산으로 올라가서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독수생활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그는
11년 동안 살다가 선종하였고,
그의 덕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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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칸젤로(Archangelus)

축일 4월 16일 

아르칸젤루스(또는 아르칸젤로)의 생애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볼로냐 시민들의 폭동 때문에
부친과 형제들을 잃은 뒤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여 유명한 수도자가 된 것은 틀림없다.
한때 그는 부친과 형제들의 살인자에게 복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모든 일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자마자 그 자리에서 복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르칸젤로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대주교로
임명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유해는 구비오(Gubbi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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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아킴(Joachim)

축일 4월 16일 

이탈리아의 시에나 태생인 요아킴은 그 지방에서
유명한 피콜로미니가(家)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성모신심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던 그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즐겨하였다. 14세 때
그는 성 필리푸스 베니치(Philippus Benizi)로부터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수도복을 받았으나,
자신은 사제직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신 미사에 참례할 때에는 너무나 열심이었기
때문에 종종 탈혼에 빠졌다.
그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직책을 가장
좋아하였다. 시에나 사람들의 존경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원장에게 한적한 수도원으로
보내주도록 간청하여 아레초(Arezzo)로 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분이었다. 시에나 사람들이
그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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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성 카리시우스(Charisius) 또는 카리시오

축일 4월 16일 

성 칼리스투스(Callistus)와
성 카리시우스(또는 카리시오)를 비롯한
9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코린토스(Corinthos)에서
바다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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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이우스(Caius)또는 카이오

성 크레멘티우스(Crementius)

축일 4월 16일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와
성 크레멘티우스(Crement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에스파냐의 사라고사(Zaragoza)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해에 발발한
두 번째 박해 때 순교했기 때문에 사라고사의
18명의 순교자들(4월 16일)에 속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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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콘타르도(Contardo)

축일 4월 16일 

성 콘타르도 순례자는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의
에스테 가문 출신으로 두 동료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한 후, 높은 언덕에 올라가 브로니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만일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이 아름다운
곳에서 죽고 싶다는 예언적인 말로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를 바친 직후부터 그는 너무나 심한
고통 때문에 브로니에 그대로 머물게 된 것이다.
그의 병이 장기적인 치료를 요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두 동료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콘타르도를 무섭게
생각한 집주인은 그를 헛간으로 내쫓았으므로
짚더미 위에서 고통을 참아 받아야 하였다.
그의 죽음 이후 높은 성덕을 증명하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비로소 그가 위대한 성인으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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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투리비오(Turibius)

축일 4월 16일 

성 투리비우스(또는 투리비오)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이 에스파냐의 여러 지역에서 판을 치고 있을
당시에 아스투리아스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릇된 사도적 저술에 기반을 둔 이 이단들은
교묘한 마니교도와 비슷했고 성직자나
평신도들에게 큰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투리비우스 주교는 처음부터 이단의 간교한
술책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강력히 대응했다.
그는 대 레오 교황의 강력한 지지자로 부상되었고
그래서 투리비우스와 레오 교황 사이에는
이 이단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쳐 서신으로 협의하였다.
투리비우스의 이런 노력에 따라 이 이단은 크게
흔들렸다. 이때를 기해 투리비우스는 교구 내의
성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잡고 신자들의 윤리성
회복에 박차를 가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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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빠떼르노 혹은 페어(paternus,pair)

축일 : 4월 16일

성 빠떼르노는 포아티에르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공직에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에
포와투의 앙시웅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 얼마 후에는 동료 수도자인 성 스꾸빌리오와
함께 노르망디 꾸땅스의 황량한 지방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그랑빌이 가까운
쉬씨에 정착하였는데, 주변의 많은 은수자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됨으로써 원장이 되었다.
그는 70세의 고령에 아브랑슈의 주교로 임명되어
13년동안 교구를 지도하였다. 그는 파리 공의회에
참석했고, 국왕 킬더베르트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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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룩뚜오소(Fructuosus)

축일 : 4월 16일

비시고트왕의 스페인 대장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희망하다가,
양친이 사망하므로써 자기 성소를 찾게 되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가난한 사람과
노예 해방을 위하여 혹은 수도원을 세우는데
사용하였다. 그가 첫번째 세운 수도원은
비에르죠 근교의 산에 세운 것이다. 그 후 그는
에집트에서 은수자로 정착하려고 하였으나
왕의 명에 의해 좌절되었다. 656년, 그는
브라가의 대주교로 승품되었고, 똘레도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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