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오늘의 성인♡
===============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Damien de Veuster)
축일 4월 15일
복자 다미안 드 베스테르(원명은 Joseph de Veuster)는
1840년 벨기에의 한 작은 마을에서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아버지 프랑스와 드 베스테르와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들처럼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으나 수도원에
들어간 큰형의 영향을 받아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
기도와 고행을 실천하면서 성장하였다.
일찌기 영성에 눈을 뜬 그는 고향에서 초등 교육과정을
마치고 발론(Vallon) 지방의 르 콩(Brain le Comt)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던 중,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적 권고를 통해 완덕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1859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
(The Fathers of the Sacred Hearts of Jesus and Mary,
일명 Picpus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수도회 회칙에 따라
의사로서 시칠리아 섬의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돕다가
4세기 초에 순교한 다미안으로 세례명을 바꾸었다.
수도회 입회 후 벨기에 루뱅과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해외선교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는 1825년 이해 수차례에 걸쳐 하와이 군도의
샌드위치 섬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1863년 하와이 선교사로 선발된 큰형 팜필 신부가
병자들을 돌보다 장티푸스에 걸리자 다미안은 형을
대신하여 하와이 선교를 자원하였다.
이듬해 하와이로 간 다미안은 호놀룰루 근교의 아피마뉴
대신학교에서 약 2개월 간 공부하고, 그 해 5월
호놀룰루 대성전에서 메그레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푸노(Puno) 지역에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다미안 신부는 1865년에는
코할라(Kohala)로 옮겨 원주민들의 인습과 싸우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당을 짓고 용암으로
덮인 섬을 돌아다니면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1865년 하와이 군도에 나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된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법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나환자들은 몰로카이(Molokai) 섬에 격리
수용되었다. 1873년 메그레 주교로부터 몰로카이 섬에
수용된 나환자들의 참상을 전해들은 다미안 신부는
33세의 나이로 그곳에 건너가 700여 명이 넘는
나환자들의 집을 지어주고, 의사의 도움 없이
나환자들의 고름을 짜 주고 환부를 씻어 주며 붕대를
갈아주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매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고 무덤을 파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자 냉담하던 환자들도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고 따르게 되었다. 1881년에는 하와이 정부로부터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카라카우아’
훈장을 받았다.
다미안 신부는 1885년 자신이 나병에 감염된 것을
알았으나 용기를 잃지 않고 나환자들을 위하여 계속
일하였다. 요양하라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다미안 신부의 유해는 1936년 몰로카이 섬에서
벨기에로 옮겨 안장되었다. 다미안 신부는 1992년 7월
시복 대상자로 확정되었고, 1995년 6월 4일 벨기에
브뤼셀(Brussel)의 퀘켈베르그 대성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
성 루아단(Ruadan)
축일 4월 15일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의 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성 루아단은 클로나드(Clonard)의
성 핀니안(Finnian)의 수제자 중의 한 분이다.
이 지역의 티페라리 지방에 그는 로트라 수도원을
세웠는데, 150명의 수도자들이 모여 살면서 기도와
노동을 번갈아가며 맡았다고 한다.
================================
성 마로(Maro)
성 에우티케(Eutyche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축일 4월 15일
성 마로와 성 에우티케(Eutyches) 그리고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로마 원로원 의원인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의 아내이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여동생의 딸인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Flavia Domitilla, 5월 12일)의
수행원으로 그녀가 폰자(Ponza) 섬으로 유배를 갔을 때
수행하였다. 그들은 나중에 결국 로마로 귀환했으나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성 에우티케는 칼에 찔려 순교하였고, 성 빅토리누스는
유황 온천에 거꾸로 매달려서 그리고
성 마로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Maximus)
성 올림피아데(Olympiades)
축일 4월 15일
페르시아의 귀족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올림피아데(Olympiades)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쇠지레로 죽을 때까지 맞아 순교하였다.
================================
성녀 바실리사(Basilissa)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
축일 4월 15일
아나스타시아는 여성형으로서 희랍어로
"죽지 않음, 부활"이란 뜻이다
근거는 희박하지만 성녀 바실리사와 로마(Rome)의
귀부인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는 개종자들로서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박해를 받아 죽은 두 성인의 시신을
발견하여 장사지냈는데, 이 일로 인하여 그들 역시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후 네로 황제의 명에
따라 참수되었다고 한다.
================================
성 에우티키오(Eutychius)
축일 4월 15일
성 에우티키우스(또는 에우티키오)는 이탈리아 로마
남쪽 도시인 페렌티노에서 순교하였다.
================================
성 크레센스(Crescens)
축일 4월 15일
성 크레스켄스(또는 크레센스)는 고대 소아시아
리키아(Lycia) 지방의 미라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성 파우실리푸스(Pausilippus)
축일 4월 15일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와
성 파우실리푸스(Pausilippus)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비잔티움(Byzantium, Constantinople의 옛 이름으로
지금의 Istanbul) 부근에서 순교하였다.
================================
성 파테르노(Paternus)
축일 4월 15일
성 파테르누스(또는 파테르노)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서 태어났다.같은 시대를 살았던
웨일스(Wales)의 주교 성 파테르누스와 혼동되기도 한다.
그는 465년 브르타뉴 지방 반의 주교로 축성되었다고
나타나 있다.
================================
성녀 훈나(Hunna)
축일 4월 15일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공작의 딸로서 후바(Huva)라고도
알려진 성녀 훈나는 후노(Huno)라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특히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는데,
가난한 이들을 자주 씻겨 주었기 때문에
‘씻어 주는 거룩한 부인’(Holy Washerwoman)이란
칭호를 받았다. 그녀의 사망 후 그 지방에서부터
그녀를 공경하기 시작하다가, 1520년에 교황 레오 10세
(Leo 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녀는 세탁부의 수호성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