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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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누토, 왕, 순교자(CANUTE THE FOURTH)
축일: 1월 19일
덴마크의 국왕 스웨닌 어스트릿슨의 아들이며,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가누토 왕의 조카인 그는
1075년에 성공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여
가누토 4세로서 덴마크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플란델의 로버트 백작 동생인 아델라와
결혼하므로써, 성직자와 선교사들을 적극 지원하였고,
많은 성당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1085년에 잉글랜드 침공을 게획하고, 준비하던 중,
귀족들에 대한 무거운 세금이 그의 동생
올라프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고 하므로써,
그는 전쟁을 그만두고 푸넨 섬으로 도망가야 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성 알반 성당에서
반란자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순교자로 보았다.
그의 무덤에는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그의 경건한 신앙생활은 높이 평가받아 왔으므로,
교황 파스칼 2 세는 그의 공경을 허락하였다.
그의 이름은 크누토(Knute)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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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나탈란, 주교(678년)
축일 : 1월 19일
성 나탈란은 스코티 북부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이 뛰어나 인간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높은 존경을 받았고, 교양 학과에도
정통하고 있었으며, 온전히 신적인 관상에
머물렀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그는 손수 땅을 경작하였고, 인간의 욕구
총족을 위한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또한 그는 사탄과 멸망으로 치닫는 세속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진 위대한 성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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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와 가족 순교자*
성 마리오(Marius)
성녀 마르타(Martha)
성 아우디팍스(Audifax)
성 아바쿰(Abachum)
축일 : 1월 19일
페르샤의 귀족인 마리오와 그의 아내 마르타
그리고 2명의 아들인 아우디팍스와 아바쿰은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로마를 순례하여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보고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크리스챤 박해를 명하므로써,
수많은 신자들이 화형이나 참수치명하고 또 화살에 맞아
숨지기도 하였는데, 이들 가족 역시 체포되었다.
마리오와 그의 두 아들은 참수당하였으나,
마르타는 물에 던져 죽었다.
이들은 모두 비아 고르넬리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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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bernard)
축일 : 1월 19일
베르나르도(bernard)
축일 : 1월 19일
필립보 라띠니한 어느 청년은 꼬를레오네에서
신기료 장수를 하던 사람인데, 그후에는 시실리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정치적인
분쟁에 뛰어들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자,
성당의 성소로 은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입장이 못되어서 성당에 머물다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자기 영혼을 잃어버릴 것으로
단정하고, 1631년에 27세의 나이로 까프친회에
입회하고, 베르나르도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훌륭한 검객답게 수도생활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의 단식과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자세는 특히 뛰어났으나, 가끔 난폭한 검객의
기질 때문에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차츰차츰 탈혼에 빠졌고, 공중에 들어 올려지는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병든 동물을 치유했는데,
이때부터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가끔 동물들을 위하여 주의기도를 함께 하였다.
그분 만큼 동물애호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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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축일 1월 19일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조국 헝가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만일 전쟁이 승리한다면 어린 마르가리타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은혜는 실제적으로 허락되었기에 세 살 난 딸을
베스프렘(Veszprem)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에
맡기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국왕 벨라 4세
(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스(Maria Laskaris)였다.
그녀는 12세 때에 첫서약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서약할 자격이 미달된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정치적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성녀 마르가리타는 수녀원을 떠나기보다는
코와 입술을 자르라고 항변하여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임을 입증하였다.
그 후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기 극기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가끔
온밤을 지새우며 성체 앞에서 기도하였고,
기도의 효력을 확신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다. “갑자기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순 없지만, 어쨌든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이 말이 입증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2명의 수녀들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더 있다가 가라고 하였지만 즉시 떠나려 했을 때
그녀의 기도로 갑자기 비가 와서 그곳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탈혼하였고 기적도 많았다.
또 사순절이 끝날 무렵이 되면 그녀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인하여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까지 되곤 하였다.
“성 금요일은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날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270년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사망한
성녀 마르가리타는 1789년 시복된 후 1943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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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가리따 부르져와, 창설자(1700년 순교)
축일 : 1월 19일
트로이스 출신인 그녀는 20세 때에 가르멜회
그다음에 글라라회에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 그녀는 카나다의
빌-마리에 정착중인 프랑스 관리가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선생을 원하므로,
그녀가 이에 동의하고, 1653년에 궤벡에 도착했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치고,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꽈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해야 하였다. 그 후 재차 입국한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1676년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법적 설립이
궤벡의 주교로부터 인가되었다. 그러나
1863년에는 수도원이 화재로 불탔으며, 2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견해 차이가 심각해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 수녀회는 괄목할만하게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제 73세가 된 그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므로써 은퇴하여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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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ANDREW)
축일 : 1월 19일
그레고가 출신인 그는 페쉬에라에서 태어나
도미니칸이 되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저 유명한 산 마르꼬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사제가 된 그는 장상의 지시에 따라 스위스와
북이탈리아 국경 지대인 발델리네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 지방은 이단이 득실거리고 또
주민들이 난폭하고 하느님없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고난에 대한 뛰어난 신심과 겸손
그리고 청빈 정신으로 삭막한 주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줌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는 발델리네 지방에서만 45년을 선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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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베르토(albert)
축일 : 1월 19일
이분의 생애는 거의 구름에 가리운 듯 하지만,
분명히 그는 아일렌드 카셀의 대주교였고,
이 교구의 수호 성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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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울프스탄(Wulfstan)
축일 : 1월 19일
울스탄이라고도 불리는 성 울프스탄은
잉글랜드 워크셔의 롱 이칭톤에서 태어나
에버샴과 피터보루그 수도원에서 공부한 후,
워르체스터 교구에서 서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그곳의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나,
1062년에 워르체스터 주교로 임명되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거룩했던 성 울프스탄은
웨스트민스터 시노드에서 주교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성덕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는 윌리암의 영국 침략 때에
주교좌를 지킨 유일한 주교로 높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노르만인들의 학정에 대하여 공적으로
반대하고 항의하였던 것이다. 그는 32년 동안이나
교구를 다스린 위대한 주교였다.
1203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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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메살리나(Messalina)
축일 1월 19일
교황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 5월 26일)의
제자인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1월 24일)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교황 성 빅토르 1세(Victor I, 7월 28일)
로부터 폴리뇨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직접 팔리움(Pallium)을 받은
첫 번째 주교로 기록되었다. 그는
약 50년 동안 주교로서 봉직하다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었다.
이교도의 신에게 희생물을 봉헌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 그는 심한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한 뒤
폴리뇨 교외에서 순교하였다. 그 당시
성 펠리키아누스로부터 수도복을 받은
성녀 메살리나가 감옥에 갇힌 그를 찾아 극진히
돌보던 중에 체포되어 죽을 때까지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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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us),
성 게론티우스(Gerontius),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수케수스(Successus),
성 율리우스(Julius),
성 카투스(Catus),
성녀 비아(Pia)
성녀 제르마나(Germana)
축일 1월 19일
성 바오로(Paulus), 성 게론티우스(Gerontius),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수케수스(Successus),
성 율리우스(Julius), 성 카투스(Catus), 성녀 비아,
성녀 게르마나(Germana)는 2세기에 누미디아(Numidia)
지방에서 순교하였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은
알려진 바가 없다.
♡1월 19일 오늘의 성인♡
2016. 1. 18. 오후 9: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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