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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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시오(Datius)
축일 1월 14일
성 다티우스(또는 다시오)의 일생은 참으로 험난하였다.
그의 주교 재임 기간은 530년에서 552년까지
계속되었지만 끝없는 반목과 투쟁 속에서 때로는
영적인 문제보다는 세속적인 일에 대항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고트족(Ostrogoths)의 침공으로부터 밀라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장군과 동맹을 맺었으나
불행하게도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벨리사리우스 장군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전에
그는 체포되어 갇혔기 때문이다.
포로가 된 성 다티우스는 그 얼마 후에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석방되었다. 밀라노에서 쫓겨난 그는 결국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용감하게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를 도와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일파와의 논쟁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체류하는
동안에 운명한 듯 하고, 그의 유해는 나중에
밀라노의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는 매사에 두려움을 몰랐으며 완전한 내적
평화를 간직한 채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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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크리나(Macrina)
축일 1월 14일
성녀 마크리나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의
할머니로서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마크리나 부부는 소아시아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와 폰투스(Pontus)
등지에서 살았는데, 갈레리우스와 막시미누스의
황제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들은 박해자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숲 속에서
7년이나 은거했으므로 수없이 굶주렸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마크리나가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11월 17일)의
제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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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말라키(Malachy)
축일 1월 14일
성 말라키(Malachias, 또는 말라기)는 구약성서
열두 편의 소예언서 중 마지막 책인 말라키서의
저자로 등장한다. 말라키서는
“야훼께서 말라키를 시켜 이스라엘에 내리신 경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서는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가치있는 증언을 수록하고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함께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말라키’라는
이름은 말라키서 1장 1절 표제에만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말라기는 ‘나의 특사’ 또는
‘나의 천사’라는 뜻이다.
4세기의 유대 전승들을 모은 “예언자들의 삶”
(Lives of the Prophets)에는 말라키가 즈불룬의
소파(Sopha) 출신으로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승에는, 말라키가 신앙심이 깊고 온유하여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보는 것이 공정하여’
말라키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가(假)에피파니우스(Pseudo-Ephiphanius)와 다른
교부들은 이 전승을 받아들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들이 기원이 늦고 비현실적이어서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증명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예언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 죄의 심각함
(2.17-3,4; 3,6-7. 13-20)을 파악한 인격적인 신앙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이혼(2,10-16), 사회 불의(3,5)에 반대한 매우
헌신적이고 통합적인 인물이었다(A.E. Hill).
그는 성전과 사제와 희생 제사 등 종교의 형식에 대한
외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설교하였지만,
단지 형식주의자나 예식주의자가 아니고 윤리적,
영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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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바(Sabas)
축일 1월 14일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인 네만야(Nemanya) 왕조를 세운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의 셋째 아들인
성 사바(Sabas)는 17세 때에 그리스의 아토스 산
(Mount Atho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세르비아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수도원을 따로 세운 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다가 1207년 그의 형제인
스테파누스 2세와 불칸(Vulkan) 사이에 불화와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돌아온 그는 스투데니트사
(Studenitsa) 수도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개혁, 특히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여 땅에 떨어졌던
신앙과 교육이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은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 일으켰고
교회 또한 크게 융성하게 하였다.
그는 방인사제와 주교를 존중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맡김으로써 더욱 발전시키는 덕을 지녔다.
그는 두 차례나 성지를 순례했는데, 두 번째 순례 중
불가리아(Bulgaria)의 티르노보(Tirnovo)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사바(Sav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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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마데오(Amadeus)
축일 1월 14일
프랑스 오트리브(Hauterives)에서 태어난
아마데우스(또는 아마데오) 영주는 16명의
봉신(封臣)들과 함께 본느보(Bonnevaux)의
시토 수도원에 들어갔다. 후에 그는 그의 아들인
로잔(Lausanne)의 아마데우스(1월 28일)를
교육시키기 위해 한 동안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는 네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뒤 본느보 수도원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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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프라시오(Euphrasius)
축일 1월 14일
성 에우프라시우스(또는 에우프라시오)는 아마도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의 기록에
나오는 성 에우크라티우스(Eucrathius)와
동일인이거나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아리우스파
반달족(Vandals)에 의해 순교한 주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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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도(Odo)
축일 1월 14일
12세기 말 이탈리아의 카르투지오 회원 가운데
노바라의 오도가 그 성덕에 있어서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고, 다만 몇 사람의 증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
(Gregorius IX)는 그의 시성 준비로 질문서를
작성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도는 진실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밤낮으로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 속에서 지냈고, 끊임없이 성서를
읽었으며, 손수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한 번은 대주교인 오데리시오가 그를 방문했는데
그는 거의 알몸으로 맨땅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주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주교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그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때 오도의 나이는 100세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9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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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1월 14일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자랐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
(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한 천사의 인도를 받고
감옥 문을 나섰다고 한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주교로 모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로한
사제이던 퀸투스(Quintus)에게 기울어지자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즉시 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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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1월 14일
로마의 사제인 성 펠릭스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그는 종종 같은 날 기념하는
놀라(Nola)의 성 펠릭스와 혼동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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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제로 혹은 루찌에로
축일 1월 14일
로제로 다 또디의 생애는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1216년에 세라핌적 사부이신
성 프란치스꼬로부터 직접 수도복을 받은 초기의
프란치스칸이란 사실 뿐이다. 그는 필립바 마떼리가
움브리아의 리에띠에 글라라회 수도원을 세우고
지도할 때 영적 지도자로 활약했고,
1237년 1월 5일에 또디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그레고리오 9세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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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뿌치
축일 1월 14일
성 안토니오 뿌치는 삐스또이아의 뽀기올레 출신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에우스따시오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음이 유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는
특히 본당일에 열성이었다. 1837년, 그는
플로렌스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때 안토니오 마리아라고 불리웠다.
평수사이던 그는 매우 정직하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동료 가운데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기도와 순종이었고, 그다음이 공부였다.
이윽고 그는 1843년에 사제가 되자 조그마한 어항인
비아제죠 본당신부가 되어 일생을 여기서 지냈다.
주민들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불렀다.
그는 본당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단체이든 조직하였지만,
항상 거룩한 사랑의 생활이란 목표를 뚜렷하게
심어주었고, 자신이 항상 모범적인 삶을 보임으로써
무리들도 본받게 헸기 때문이었다. 1854년과 1866년
두차례에 걸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의 사랑은
더 돋보였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직접 간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봉사대를 발족시켜
본당 사목의 진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진실한 의미에서 "주민들의 사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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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도릭
축일 1월 14일
성 오도릭은 프리울리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에서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 섬기려는 사명을 느끼고
원장의 허락을 받아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1321년경에 그는
서인도에 상륙했고, 도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구 그리고, 1331년에는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곳 저곳을 다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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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질스
축일 1월 14일
그는 노동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으나
놀라운 열심을 물려 받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프란치스칸의 영향을 받았는데, 장성한 뒤에는
고독한 분위기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여,
성모의 소경당 근교에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그는 기도에만 몰두하였고, 새와 짐승들이
그의 친구였다. 그 후 그는 프란치스꼬회의 평수사로
들어갔지만, 그전처럼 은수자로 살았다.
그는 자주 탈혼하였고,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죽은 지 6개월 동안 시신이
썩지 않았고, 무덤에서도 로사리오를 손에 잡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으며, 성체조배를
하는 듯 보였다고 한다.
♡1월 14일 오늘의 성인♡
2016. 1. 13. 오후 4:51:59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