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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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티쿠스(Zotic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Rogatus)
성 모데스투스(Modestus)
성
카스툴루스(Castulus)
축일 1월 12일
성 조티쿠스(Zotic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모데스투스(Modestus) 그리고
성 카스툴루스(Castulus)는 아프리카에서
40명에서 50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순교할 때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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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져와(Margaret Bourgeoys)
축일 1월 12일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트루아(Troyes)
출신인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20세 때에
카르멜회, 클라라회에
차례로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에 그녀는 캐나다의
빌 마리에 정착중인 프랑스 관리가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선생을 원하자 그에 동의하고
1653년 퀘벡의 몬트리올(Montreal)에 도착하였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친
그녀는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쿼이(Iroquois)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하였다.
그 후 재차
입국한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1676년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법적 설립이
퀘벡의
주교로부터 인가되었다.
그러나 1863년에는 수도원이 화재로 불탔으며
2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견해 차이가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노틀담 수녀회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73세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자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시복되었고, 1982년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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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Martin)
축일 1월 12일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에스파냐 북부 레온에서 태어났다. 그는
산 마르셀로(San Marcelo)에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한 다음 레온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수도원으로
옮겼다. 그는 다작의 금욕주의적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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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비스코프(Benedict Biscop)
축일 1월 12일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오스위의
궁중 관리이자 귀족 출신인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
(Benedictus
Biscop, 또는 베네딕토)의 본래 이름은
비스코프 바두칭(Biscop Baducing)이었다.
그는 25세 되던 해에 궁중을
떠났다.
그는 653년에 로마(Rome)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서 연구와 영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두 번째의 로마 순례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의 레랭(Lerins)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2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세 번째로 로마를 순례했을 때 교황 성 비탈리아누스
(Vitalianus, 1월 27일)가 마침
캔터베리(Canterbury)의
신임 대주교로 선임된 성 테오도루스
(Theodorus, 9월 19일)를 수행토록 명하여 이를
성공리에 마쳤다.
성 테오도루스는 그를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고, 2년 후에 그는 성인들의
유해, 종교 예술품, 회화, 원고 등을 수집하기
위하여 로마로 귀향하였다.
674년에 그는 웨어(Wear) 강 입구에 수도원을 세워
성 베드로에게 봉헌하였다. 이 건물은 그 당시
영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법으로 지었는데,
프랑스의 장인들이 지어 지금도 유명한
웨어마우스(Wearmouth) 수도원이 되었다.
그리고 682년에는 타인(Tyne) 강에서 6마일 거리에
두 번째 수도원을 짓고 성 바오로에게 봉헌하니
이곳이
자로우(Jarrow) 수도원이다.
그는 또 위의 두 수도원 수도자들에게 성무일도를
노래하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익히도록 음악
전문가를 초빙하였다. 그의 지도하에 두 수도원은
학문과 로마 전례의 중심지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3년을
중풍으로 침대 위에서
지내다가 1월 12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전기는 성 베다(Beda)가 썼다.
그는 베네트
비스코프(Benet Biscop)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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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Bernard)
축일 1월 12일
필리포 라티노(Filippo Latino)란
어느 청년은
시칠리아(Sicilia) 섬의 코를레오네에서
신기료장수를 하던 사람인데, 그 후에는
시칠리아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정치적인 분쟁에 뛰어들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자 성당의 성소로 은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입장이 못 되어서 성당에
머물다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자기 영혼을
잃어버릴 것으로 단정하고, 1631년에 27세의
나이로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베르나르두스
(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훌륭한 검객답게 수도생활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는 단식과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자세에서
특별히 뛰어났으나, 가끔 난폭한 검객의
기질 때문에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차츰차츰 탈혼에 빠졌고, 공중에
떠오르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병든 동물을 치유했는데,
그때부터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가끔 동물들을 위하여 주님의 기도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성 베르나르두스 만큼 동물애호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팔레르모(Palermo)에서 사망한 그는
1768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6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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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리아노(Victorian)
축일 1월 12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던
성 빅토리아누스(또는 빅토리아노)는
아라곤(Aragun)의 아산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의 사후 40년경에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
(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는
그의 성덕과 기적 그리고 수도원 규칙에 대한
그의 명성 등을 모아 저술하였다.
그러나 자세한 그의 이력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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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카디오(Arcadius)
축일 1월 12일
성 아르카디우스(또는 아르카디오)는
발레리아누스 혹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카이사레아(Caesarea)의
마우레타니아에서 순교한 듯
보인다.
그는 아마도 학덕이 있는 지체 높은 사람인 듯한데,
박해가 임박할 때에 그 지방의 산중에 들어가
은수생활을 하였으나
비밀에 붙이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총독이 군인들을 산속으로 보내어
체포하여 심문관에게 넘겼고, 심문관은
아르카디우스에게
신상 앞에 희생을 봉헌하라고
요구하였다.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형리들이
그의 손을 잘랐으며, 길거리로 끌어내어
공개적으로
참수시켰다. 이때
성 아르카디우스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당신의 지혜를 제게 가르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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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Anthony
Mary Pucci)
축일 1월 12일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푸치
(Antonius Maria Pucci,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피스토이아(Pistoia)의 포지오네
(Poggione) 출신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음이 유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는 특히 본당 일에 열성이었다.
1837년 그는 피렌체(Firenze)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그때
안토니우스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평수사이던 그는 매우 정직하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동료들 가운데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기도와 순종이었고 그 다음이 공부였다.
이윽고 그는 1843년에 사제가 되자
조그마한
어항인 비아레조(Viareggio)의 본당신부가 되어
일생을 그곳에서 지냈다. 주민들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불렀다. 그는 본당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단체든지 조직하였지만, 항상 거룩한 사랑의
생활이란 목표를 뚜렷하게 심어주었고,
자신이 먼저 모범적인 삶을 보임으로써 신자들도
본받게 헸기 때문이었다. 1854년과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의 사랑은
더욱 돋보였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직접 간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봉사대를 발족시켜
본당사목의 본보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민들의 사제'였다.
그는
1962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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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그리우스(Tigrius)
성 에우트로피오(Eutropius)
축일 1월 12일
성
티그리우스(Tigrius)는 사제였고,
성 에우트로피우스(또는 에우트로피오)는
독서직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르카디우스 황제 때 대성당과 시 의회
건물의 방화 혐의로 고발되었다. 이것은
그 도시의 지도자인 옵타투스가 우상 숭배자였고
또 그리스도교를 극도로 증오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략이라고 한다.
원래 성 티그리우스는 해방된 노예였으며
그의 인품과 애덕으로 인하여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annes Chrisostomus,9월 13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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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드(Aelred)
축일 1월 12일
영국의 헥삼(Hexham) 출신인 성 아일레드
(Aelred, 또는
엘레드)는 에텔레드(Ethelred)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신심 깊고 영적인 스코틀랜드의
다윗 왕의 궁중에서 일하는 집사장이었다.
그는 궁중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욱 엄격한 생활을
염원하여 24세 되던 해에 스코틀랜드를 떠나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리보에서 시토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1142년 링컨셔(Lincolnshire)
리버스비의 시토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어
5년을 봉직하다가 다시 리보 수도원의
원장으로 되돌아 왔다.
설교와 엄격한 생활로 뛰어난
덕행을 쌓았던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여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영적
우정에 관하여”란 저서를 펴냈으며
수많은 설교집과 기도문을 만들었다.
“사랑의 거울”이란 책은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다룬
책으로 아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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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1월 12일
라벤나의 주교(452-494년) 성 요한(Joannes)은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의 분노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에 의해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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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티코(Zoticus)
축일 1월 12일
이탈리아 티볼리의 순교자인 성
조티쿠스
(또는 조티코)는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 7월 18일)의
남편인 성 게툴리우스(Getulius, 6월
10일)와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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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타시아나(Tatiana)
축일 1월 12일
동방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는 성녀
타티아나
(또는 타시아나)는 230년경에 로마(Rome)에서
순교한 교회의 봉사자였다. 그녀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학자들은 성녀 마르티나
(Martina, 1월 30일)나 성녀 프리스카(Prisca, 1월 18일)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 역시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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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보(Probus)
축일 1월 12일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인
성
프로부스(또는 프로보)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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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살비오 혹은 소브(salvius or sauve)
축일 : 1월 12일
온갖 기적으로
유명한 성 살비오는
아도를 계승하여 아미앙의 주교좌에 착좌하였고,
테오도릭 2세 치하에서 크게 번영하였다.
성인의 유해는
처음에 피카르디의 몽트레이유에서
공경을 받다가, 나중에는 그곳의 베네딕또
수도원에 안장되었으며, 또다시 아미앙 대성당에
이장되었다. 성 살비오가 순교자로 기록되었지만,
볼란도 신부는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고 한다.
♡1월 12일 오늘의 성인♡
2016. 1. 12. 오전 7:31:11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