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맙소사!

2025. 2. 16. 오전 5: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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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맙소사!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 가톨릭문인회

 

어느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하고 읊었지만 / 나는 마음이 하도 망측해서 /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고 어쩌구커녕 / 숫제 두렵다. (<고백> 일부)

가톨릭 시인 구상(1919~2004)의 작품이다. 이제는 하느님 품 안에 있는 구상 시인은 인생말기에 머물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그의 집을 관수재(觀水齋)라 불렀다. 

세상 사람들은 하얀 턱수염의 그를 위대한 시인이요 선생님이라 불렀지만 그는 늘 하느님 앞에 드리운 자신의 긴 그림자를 부끄러워했다. 

시인의 작품 한 편을 더 열어 본다. 

이제 머지않아 나는 /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 하느님, 맙소사!,(<임종고백> 일부)

시인은 평생 자신이 걸어갔던 삶의 길과 신앙의 대상 앞에 선 마음을 하느님, 맙소사!란 시어로 가름했지만 그 외마디를 가로지르는 그림자의 깊이는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시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말의 개념적 의미를 넘는다. 구상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가 지닌 신앙의 깊이를 절감한다.

한국의 종교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오늘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현실이다. 

매년 발표되는 <한국의 종교현황>을 보면 한편으로 놀랍고 또 다른 한편으로 우스운 것은 각 종단이 밝힌 종교인의 합계가 총인구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종교를 2중 혹은 3중으로 등록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어디선가 허깨비 숫자가 들어간 것임에 틀림없다.

그토록 종교인구가 많으면서도 도처에 벌어지는 전쟁과 아귀다툼과 환경 위기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면 그야말로 하느님, 맙소사!‘.

종교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종교의 문턱에서 만난 신앙은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그 어떤 초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움 이전에 이미 자신의 얼굴에 뜨거운 숯 한 덩어리를 올려 놓았다는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움의 연속이며, 스승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자책의 긴 그림자가 늘 따라다니는 길이다.

구상 시인은 시인이기에 그 마음을 하느님, 맙소사!‘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에 그 마음을 고백한 것이다. 

종교인은 많고 넘치지만 신앙인이 없는 세상에서 시인의 고백은 또 하나의 이정표이다.

오늘 주님의 행복선언 앞에서 다시 옷깃을 여민다. 행복이란 말은 여전히 가슴 뛰는 말이며, 가난이란 말은 지금여기에서 함께하라는 낮은 목소리다.

2025년 희년의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희망의 순례자란 말을 다시금 새긴다. 

희년희망순례자란 한 단어 한 단어를 꼭 꼭 소리 내어 세상 안으로 퍼지게 해보련다.

 

                                                               2025/02/16 마산교구주보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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