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은 새해 결심
평신도 단상
지난해 말 ’1인 가구 시대의 신앙과 공동체‘를 주제로 한 교구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청장년 1인 가구 신자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구체적인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청년이 기성세대의 신앙생활을 옆에서 보고 느낀 점을 나눈 시간이었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기성세대가 스스로 행복하기를,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랐다.
성당에서 활동하시는 어른들이 무심코 하는 ”우리는 힘드니까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맡아서 봉사해주면 좋겠어“라는 애기를 들으며,
어른들이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몸은 힘듦을 간파했다.
지나온 시절의 ”배고픈 게 얼마나 힘든 건데“ 라든가, 고부 관계에 관한 부정적인 편견들은 피부에 와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청년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 받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겪어 보니까 괜찮아. 인생은 견딜 만한 거야“ 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마치 감추고 싶어서 꼭꼭 숨겨두었던 나의 본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교회를 위해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희생과 헌신을 해왔고, 그것만을 기쁨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니?
무엇보다도 청년들은 어른들이 행복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면 자연스레 청년 세대들이 공동체 일원으로 활동하겠구나!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거나 자리를 물러줄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낮선 교우, 새로운 교우들을 기꺼이 환대하고 서로 다른 경험, 생각, 방법들을 경청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친교의 시간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서로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라떼는 말이야‘ 식의 설익은 대안 제시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 안의 마음의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2025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새해 결심을 할 새도 없었다.
주님의 평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희년을 살아가는 나의 새해 결심은 ’친교‘의 실천이다.
사람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이다.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랑의 친교, 하느님의 자녀로서 나약하고 상처 받을 수 있는 우리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교로
’꺼지지 않는 희망‘의 희년을 살아가야겠다고 뉘늦은 다짐을 해본다.
2025/01/26 춘천교구주보에서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