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님의 기고문 발췌
신흥영성에 대해 요청되는 사도직
신흥영성(뉴에이지) 운동의 전략에는 전략으로, 원리는 원리로 대응해야 한다. ‘거짓 주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대적해야 한다. 사탄의 유혹하는 달콤한 말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당할 때 쓰신 방법이었다. 구체적으로 신흥영성 운동의 사상에 대해서 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도직 수행을 요청받는다.
첫째, 태초부터 있어 왔던 '뱀의 음모'가 신흥영성 운동의 본질임을 깨우쳐야 한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학문적이지 못하다. 다분히 근본주의적인 색깔을 띤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신흥영성 운동가들의 주장은 공공연히 그리스도교를 반대하고, 공격하고, 파괴하고 있다. 뱀이 아니고서야, 사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이 점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교묘한 것은 신흥영성 운동가들도 그리스도교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 개념을 왜곡하여 오류에 빠트린다. ‘하느님’을 그들은 비인격적인 실체요 모든 것에 충만한 에너지로 설명한다. ‘성령’을 창조적, 정신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뉴에이지의 스승이며 자신이 하느님임을 깨달은 계몽된 인간으로, ‘사람’을 내적으로 선하고 신성하며 시간과 영원에 필요한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존재로, ‘죄’를 자기 안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죽음’을 사람이 하느님, 곧 우주의 편만한 에너지와의 융합을 체험하고자 하는 순간으로 왜곡하여 그리스도교 사상을 소멸시켜버린다. 그리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영적 스승을 찾고 의식의 변용을 추구하면서 사악한 영의 영향력 아래 자신을 방치하게 한다. 또한 삶의 기초를 ‘자신이 보기에 옳은 것’에 둠으로써 절대 진리를 거부한다.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도 바울로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문제의 본질은 교회와 신흥영성 운동과의 싸움이 바로 ‘영적 싸움’이라는 데 있는 것이다.
둘째, 식별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를 따라 ‘옳고 거룩한’ 흐름에 대해서는 기류에 동승하고 선도하되 ‘오류와 죄악’의 물살에 대해서는 저지 또는 방향전환을 도모할 줄 알아야 한다. 성서에 근거를 둔 이 접근법은 ‘식별’을 통하여 분리(Separation), 보존(Conservation), 변형(Transformation) 간에 균형 있는 선택을 하기를 권한다. 물론 이는 교회 차원의 대책이다. 신자 개인에게 맡겨질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 천주교회 전체의 차원, 주교회의, 교구의 차원에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을 식별한다.
‘영을 식별하는 은사’(1요한 4,1; 1고린 2,13)를 통하여 신흥영성 운동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고 그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도록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흥영성 운동은 학문의 전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평신도 전문가들의 진지한 연구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동양의 종교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신비주의적인 수행방법들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를 토대로 복음의 빛으로 판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분리할 것은 분리한다.
밀교(비교)의식, 접신술(강신술) 등 ‘가증한 것들’(신명 18)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오류에 빠진 문화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1요한 2,15). 예수께서는 버림받은 자, 죄인들과 함께 하셨지만 어떤 종류의 문화적인 죄에도 타협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거룩함’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죄악과 오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분리'의 길을 택해야 한다.
(3) 보존할 것은 보존한다.
신흥영성 운동과 관련된 문화 가운데에도 ‘옳고 거룩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도교 심리학자와 뉴에이지의 심리학자들은 모두 유물론에 반대한다. 인간은 어떤 기계나 동물보다도 가치 있으며, 그러한 인간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즉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거짓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참된 것을 부분적으로 들여와서 내세울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서 참된 것까지 몽땅 거짓된 것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심각한 오류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시정할 것은 시정한다.
죄와 오류에 빠져 있던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함과 진리로 변화시켜 주셨다. 이처럼 그리스도 교회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능력과 사명을 부여받았다. 우리가 악에서 분리되고 그것을 저주하는 것은 소극적 반응이 될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포기해버리면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취할 것이다.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성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저 유지되고 보존되는 데 그친다면 교회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로부터의 분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것을 개선하고 변형시키고자 하는 소명(책임)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신자 각자가 영적으로 무장될 필요가 있다
신흥영성 운동의 유혹과 공격은 사위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로의 권고를 따라 빈틈없이 무장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올 때에 그들에게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