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성운동, 왜 위험한가?

2006. 3. 23. 오전 2:26:53

글자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님의 기고문 발췌

 

신영성 운동, 왜 위험한가?

근래에 들어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기성 종교의 교세가 점점 쇠퇴하고 있는데 반하여, 신영성 운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는 현상은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이와는 달리 단전호흡, 기공, 요가, 명상운동의 참여자는 이미 수백만 명을 넘었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기성종교의 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에서 이탈하여 신영성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영성 운동은 어떻게 기성종교의 신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신영성 운동은 왜 위험한 것일까?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이지 않는다.

신영성 운동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물리적인 시설과 신자공동체, 교계제도, 집단적인 예배의식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신영성 운동의 활동이 종교-비종교의 경계, 나아가 종교-경제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신영성 운동이 ‘구원재’ (예를 들면 영성 프로그램, 심리 프로그램, 건강 프로그램 등)를 ‘상품화’하여 정신자산을 팔고 사는 ‘소비사회’의 신(新)소비문화를 등에 업고, 종교와 경제의 경계를 침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미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문화자본의 영향과 지배력을 배경으로 신영성 운동은 탈(脫)현대사회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하면서, 야금야금 대중 속을 파고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마디로 신영성 운동은 사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운동’(movement)도 아니고, 사교(cult)나 이단종파(sect)로 분류할 수도 없으며 딱 부러지게 종교(religion)라고도 지칭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종교대신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분명히 종교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형태로 대중을 파고들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인 것이다.


둘째, 다면적(多面的)이다.

신영성 운동은 여러 얼굴로 나타난다. 특히 뉴 에이지 운동은 영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의 혼합체이며 사회학, 신학, 철학, 순수과학을 다 포괄하고 있는 운동이다. 또한 현대 심리학, 의학 등 전문분야에 기초를 둔 잠재력 계발 운동인 동시에 스포츠이기도 하다.


셋째, 네트워크 조직을 활용한다.

이는 특히 뉴 에이지에 해당하는 말이다. 보통 그들은 작은 집단이며 더 이상의 형태적 조직 없이 나타나고 있고 대부분은 책, 잡지, 신문, TV, 점성학 책들에 의한 대중 매체와 회의, 전화통화, 유령조직, 강연, 연수회 훈련 테이프 등 정치적 제휴를 통해 서로서로 통합되고 확산된다. 이들 작은 그룹은 서로서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뉴 에이지’라고 선언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연락망을 가지고 있다. 뉴 에이지 운동의 중요한 서적인 퍼거슨의 「뉴 에이지 혁명」은 뉴 에이지 조직이 한 점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연결되는 그물망 조직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도자는 없지만 강력한 어떤 조직망이 이제 미국 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순간이다. 이 조직망이야말로 ‘물병자리 시대의 공모’(Aquarian Conspiracy)이다. 이 공모자들의 조직에는 정당, 이념, 단체, 사교회 또는 동우회 등의 전형적 형태의 조직이 없다. 소규모 모임과 느슨한 조직망이 있을 뿐이지만, 이 공모에 참여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다. 이들은 강의실에서, TV에서, 인쇄물을 통해서, 영화 안에서, 미술 분야 안에서, 노래를 통해서, 과학 잡지에서, 순회강연 중에서, 커피타임 중에서, 정부 문서상에서, 모임석상에서 그리고 새로운 조직의 정책수립 및 입법과정 등에서 새로운 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변혁에 대한 사상은 건강 관련 책자나 스포츠 입문서, 다이어트, 사업 경영, 자기주장, 스트레스, 인간관계, 자기 개선 등에 관한 책자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넷째, 탁월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신영성 운동이 내세우는 영성 상품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유혹적으로 보인다. 마케팅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특히 뉴 에이지는 현대인이 호감을 갖고 있는 인본주의, 동양의 신비사상, 평화와 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화합과 통일, 인간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희망 등으로 그들의 주장을 포장하고 상품화하여 시장에 내놓는다.
그리하여 (1) 서구사회에서 신영성 운동은 1960년대의 반(反)문화운동을 주도한 뉴 레프트(신좌파)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었고, 1970년대 이후 전통사회와 물질문명에 반감을 갖는 모든 이들 사이에 이른바 ‘탈(脫)물질적 가치들’을 확산시킴으로써, 지배적 문화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와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생존의 욕구가 강했던 ‘386 세대’들을 중심대상으로 하여 동양적 전통문화에 의지하고 있는 ‘기(氣)수련문화’가 널리 유행하는 한편, ‘신세대’들 사이에서 마법과 전설, 신화들이 어우러진 ‘판타지(fantasy) 문화’가 흥행을 올릴 수 있었다. 서구 문화의 판타스틱한 요소들에 강한 동경을 갖고 있는 신세대에 맞는 마케팅이 주효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상을 차별화하여 관심과 흥밋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구매력을 증대하는 효과를 올려왔던 것이다.


다섯째, 장기적이며 단계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신영성 운동은 점진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뉴 에이지는 궁극적으로 ‘단일 세계경제’ 체제 확립으로 ‘단일 세계정부’를 탄생시킨 후, ‘단일 세계종교’라는 종교통합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지만, 그 목표는 야금야금 제시되기 때문에 대번에 부담이나 경계심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부지불식간에 젖어드는 것이다.


여섯째, 대중문화를 통해 침투한다.

이들 여러 형태의 뉴 에이지 운동은 전략적으로 대중문화를 통해 암암리에 퍼져 나가기를 원한다. 신영성의 다양한 변종은 문화의 형태로 대중 속을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스며들다 보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연스레 이를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이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점들이 신영성 운동이 엄청난 파급력으로 기성종교를 잠식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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