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서를 공부하는 목적은 성서 본문의 뜻과 메시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에 연결시켜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이 목적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먼저 본문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한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과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서 본문을
뜻과는 달리 또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서는 맹신을 강요하는 광신주의(Fanaticism)나
맹종을 강요하는 교조주의(Dogmatism)의 시녀가 아니다.
먼저 성서 본문을 실제의 글자나 어구가 뜻하는 그대로 알아들어야 한다.
이른바 '문자적 의미'(literal sense)를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글자 하나하나를 역사,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축자주의(Literalism)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성서 저자가 본문을 기록할 때 거기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깨우치려는 노력이다.
성서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밝혀내는 일은 18세기 이래 유럽에서 발전시켜 온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이 큰 공헌을 하였다.
역사비평 방법론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성서 저자가 본문에 담아 전달하고자 한 글자와 어구의 뜻을 깨우쳤으면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뜻을 바탕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이끄시는 성령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문의 상아탑 속에 갇혀 지적 호기심만을 채우는
이성주의(Rationalism)에 빠지기 쉽상이다.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감을 받은 성서 본문은 다시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자 한다.
결국 성서 본문의 깊은 뜻과 메시지는 문자적 의미를 깨우치려는 부단한 탐구와
성령의 인도에 힘입어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런데 성서 메시지의 실체는 본문 안에서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끌어안는다.
첫째 요소는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의 옛 신앙인들이 정치, 문화, 경제, 사회의 맥락 안에서 엮어낸 삶이고
둘째 요소는 주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며
셋째 요소는 그들을 찾아온 하느님 말씀이다.
이 세 가지 요소, 삶과 믿음과 말씀은 언제나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성서에서 개인이나 공동체가 실패한 경우를 보면 이 세 요소가 저마다 떨어져 있었을 때이고,
성공한 경우는 이 셋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이다.
이 세 요소와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정확히 읽어 내고 거기에서 얻은 메시지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는 일이 바로 성서 공부의 본 목적이다.
성서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한 독자라 할지라도
본문과 그 메시지에 접근하여 그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다면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성서 입문> (상)에서 발췌
한님 성서연구소 정태현 신부님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