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렬 신부님 강론 중에서

2009. 2. 10. 오후 12:23:59

글자

용서와 화해의 선물만큼 더 값지고 아름다운 선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용서해야 되는가?

용서라는 단어가 나오는 이 순간에도 어떤 인간 생각하면 온 몸에

전율이 오고 분노가 치밀어 오는데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의 시작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용서도 훈련입니다.


 용서와 화해를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가

‘초보였던 인생시절을 생각하라.’ 고 성인들은 이야기 하십니다.


 시내에서 초보운전자가 앞길을 가로막아서 정체현상을 일으키거나

시동을 꺼트려서 뒤에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개 차 뒤에다가

초보운전

운전시작 1일째

왕초보입니다.

나는 이유 없이 브레이크를 자주 밟습니다.

알아서 피하십시오.

제 기억에 남아 있는 돋보이는 글귀는 

‘미안합니다...당신도 초보자였던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은 누구나 인생의 초보자 시절이 있었습니다.

철없던 젊은 시절에 어른들한테 혼도 많이 났었고, 신입생 시절도 있었고

사회초년생으로 실수도 많이 한 적 있었습니다.

올챙이적 시절을 잊어버리는 입 큰 개구리마냥  ‘내게는 그런 시절이 없었노라고.....’

나는 처음부터 전문가로 프로로 존재했었다고 착각하고

잘 모르거나 내 앞에서 실수하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다그치고 화를

낸다면 얼마나 자기기만이요, 자기모순이겠습니까?

내가 초보였던 시절을 기억해 보면 용서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지만

용서가 사랑의 시작이니 그렇게 되면 사랑은 저절로 내 것이 됩니다.

용서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랑이 되겠습니까?


 아기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초보자로서, 작은 핏덩어리로서 삶을 시작하신 겁니다.

울며 보채는 어린 아기에게서 그 위대한 메시아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앞에서 자주 나에게 상처를 주는 저 사람의 모습에서 내 인생의

초보시절의 내 모습을 봐야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한 초보자일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인생을 나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나에게 상처주는 저 사람이 영원히 초보자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늘 상처를 주는 저 남편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으로

변할거라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내 가슴에다가 대못을 박는 저 사람이 내 손을 잡고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희망을 갖고 우리는 끝까지 용서의 끈을 놓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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