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신부의 봉헌이야기” 괴짜 신부님이 한 분 계셨다. 얼마나 괴짜인가는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괴짜로 끝나면 좋은데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것도 인간적인 손해를 입혀 주시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봉헌도 다 때가 있는 것이야 없거나 죽어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다 자신을 위한 것이라나.......’ 어떻든 괴짜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론이 끝나고 봉헌시간이 되자, 잠깐! 하더니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그래 그냥 지나갈 수 없으니 지금 시키는 대로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한다.’ 하며 구호를 외치게 하고는, 지금부터 자신의 손을 주머니나 손가방에 넣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가난한 시골 본당 짓는데 몽땅 봉헌하라는 것이다. 이 말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이며 그 결과는 하느님께 나쁘게 찍힌다는 것이다. 기습작전에 말린 교우들이라 서로 눈치를 봐가며 당황한 표정과 황당함을 억누르며 다들 주머니와 손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런데 한 자매가 얼굴빛이 창백해지면서 급기야 눈물을 떨 군다. 괴짜신부도 눈물 앞에선 마음이 약하던지 조용히 불러 물어본다. ‘신부님 평생 세를 살다가 이제 겨우 15평 아파트를 하나 마련했는데 오늘 그 잔금을 치르는 날입니다.’ 듣고 있던 괴짜신부도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다 생각했는지, 그 돈도 가정의 성전을 짓는 돈이니 그 돈은 그대로 남겨두고 가지고 있는 용돈만 봉헌하라 하니 그 울상의 얼굴이 갑자기 함박꽃 마냥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저절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다음주 강론에서 괴짜신부 왈! 본당신부 된 이래 최고의 염부 돈을 보았다며 싱글벙글 하면서 나만 이렇게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축복 받은 것이란다. 이유인즉 세상에 나서 이렇게 몽땅 자신을 봉헌한 적이 몇 번이나 있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빈 지갑의 허전함을 맛보았지만 나도 할 수 있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며 빈 지갑은 다시 주님께서 채워주심을 체험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예! 사람은 가끔씩 위장, 머리,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만 심신이 맑고 깨끗해지듯이 우리의 주머니도 가끔은 비워보아야만 돈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도 알게 된다. 그 괴짜신부가 없었던들 빈 주머니의 고상한 맛을 어떻게 느꼈겠는가? 예수님도 헌금에 대해 콕 찔러 말씀하시길,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라며 가난한 과부가 당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예고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뭔가를 바칠 때는 나와 가족과 이웃과 하느님을 시원스럽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한다. 이름 없는 아프리카의 한 성녀께서는 자신의 재산을 다 봉헌하고도 모자라, 신앙의 박해가 오자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부탁을 들어주면 배교를 하는가? 잔뜩 기대하며 물으니, 성서만은 읽다 죽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관리가 성서를 든 팔을 자르니, 다른 팔로 들었고, 피를 흘리며 겨드랑이로 성서를 잡았더니, 또 어깨를 칼로 내리치니 목으로 성서를 감쌌다. 그 순간 칼은 목을 향해 날아왔고 성녀는 순교를 하셨다. 우리가 성녀처럼 몽땅 봉헌하지 못한다 해도 과부의 봉헌정신을 본받고 살자는 것이다. 그 것이 나를 영적으로 살찌우는 것이며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다.
연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그런 일을 할 때 그리스도가 오는 곳을 마련하는 가난한 마음의 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참 봉헌의 시간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