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못 성지

2007. 12. 1. 오후 11:46:53

글자
 

 

 

갈매못성지에서.
 


 

사형 집행은 정오경에 있었다.

형장으로 택해진 곳은 바닷가의 모래사장 이었다.

통상적인 준비외에 관장의 천막옆에,

병사 아홉명을 배치해 놓았다.

이들은 필요한 경우에 증거자들에게 발사할수 있도록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또 다른 병사 200명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구경꾼들을

막기위하여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신자 몇 명이 구경꾼들 틈에 끼어 있었는데,

그들이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마지막 순간에 관장이,

유럽 신부들에게

땅에 엎드려 절을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블뤼 주교는

자신들은 프랑스식으로 인사하겠다고 하고 다들 그렇게 했다.

그러자 관장은 자존심이 상하여 그들을 자기앞의 땅바닥에

쓰러뜨리도록시켰다.

다블뤼 주교가 처음으로 참수되었다 


 

사람들은 주교님을 제일 먼저 옷을 벗기고

두 팔을 잡아서 어깨가 젖혀질 정도로 등 뒤에다 세게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막대기 하나를 양 겨드랑이에 가로로 찔러 놓고는

포졸들이 이 막대기의 양쪽 끝을 하나씩 잡고

사형수가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도록 묶었습니다.

동아줄로 머리 타래의 끝을 묶고는

포졸 하나가 다른 쪽 끈을 잡고 7발짝 걸어 갔습니다.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주교님을 쓰러뜨리고,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목밑에

6cm 뚜게의 작은 장작을 놓았습니다.

망나니는 극도의 탐욕 때문에 첫 번째 일격을 가했는데

죽음을 면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희생자가 고통으로 떨면서 피를 흘리고 있는 동안

망나니는 자신이 받아야 할 보수에 대해 흥정을 했습니다.

기나긴 10분이 지난 후에 피를 내는 작업에 대한 대가로

500프랑 가까이를 얻어내고서야 유유하게 돌아와서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희생자는 숨을 거둔 뒤였다고 주장합니다.

머리를 몸에서 때어내는 데는 칼질을 두 번 더 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 머리는 말뚝 세 개를 땅에 박고 맨위를 합쳐 놓고는

그 끝에 달려졌습니다.

몸전체를 어떤 육식동물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것처럼

머리도 그 상태로 사흘동안 전시되었습니다.

 


 

조선의 제5대 대목구장이며 아콘 주교인 앙투안 다블뤼 주교는

1866년 3월 30일(음력 2월 14일) 성금요일에 이렇게 생을 마쳤습니다.

48년 14일의 생애였고

사제로서는 25년째,

조선선교 21년째,

주교로서 10년째였습니다.

 


 

처형하기 전에 조선의 상스러은 관례대로,

이 관례는 여성에게까지도 적용되었는데,

디블뤼 주교님은 완전히 발가벗겨지셨습니다.

 

 


 

모범적인  생활과 명예로운 죽음을 한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인

 

마리-니콜라-앙투안 다블뤼는

1818년 3월 16일 성 월요일 오전 10시에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오메트로 신부가 주교의 뒤를 따라

두 번의 칼질을 받고 순교 치명하였다.

다음 차례는 위앵 신부였다.

위앤 신부는 젊어서 죽음을 겁내지 않고 원통히 여기지 않으나,

다만 외인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회자수의 칼을 받고 순교 하였다.

그리고 황석두와 장주기도 회자수가 내리친 칼을 받고 앞서 간 주교와 두 신부의 뒤를 따라 순교 치명하였다.

 


 

 

오천 수영에는 회자수가 없기 때문에 공주에서 돈을 주고 데려 왔다고 하였다. 회자수란 군문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천역을 맡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주교와 두 신부는 주머니를 털었다. 50냥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돈을 회자수에게 주면서 우리 다섯 사람의 목을 잘라 달라며 부탁하였다. 자기 돈을 주면서 자기 목을 잘라 달라는 눈물겨운 참극이었다. 거나하게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된 회자수가 칼날을 번뜩이며 다블뤼 주교에게 다가왔다.

주교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갈매못과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서해안 고속도로 광천 인터체인지를 나와 오른족으로 차를 돌려 오천향 가는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가노라면 갈매못 순교성지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곳곳에서 만날수가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산9-53번지에 위치한 갈매못 성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닷가에 위치한 순교성지이다.

갈매못은 갈매기 연못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1866년 병인박해때에 고종비(후의 명성황후)의 간택을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라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다섯분(다블뤼 안 주교.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위앵 민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회장 장 주기 요셉 회장) 성인을 군문효수한 곳이다.

이곳에서 순교하시여 이름이 전해지는 박 베드로. 손치양 요한. 이영중. 이바르톨로메오. 임운필. 그리고 500여 명에 이르는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곳이다.

 
 

 

Gounod, Charles Francois (1818~1893)

 

댓글 4

  • 2007년 12월 1일 오후 11:53

    얼마 전 크리스피나 자매님 여기 다녀오셨다 하셨죠? 내년 봄 쯤 전례단 성지순례 장소로 추천하고 싶지만, 너무 멀어서 힘들겠죠?

  • 2007년 12월 2일 오전 12:52

    세시간 정도 걸렸던것 같아요! 정말 너무 좋았고, 영성체후 묵상뒤 제대가 열리면서 바다가 보이는 장면은 마치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답니다. 특별히 구노의 아베마리아로 묵상 음악이 나오는데 다블뤼주교님과 구노와는 둘도없는 친구 사이였답니다. 그외에 30분거리마다 신리성지, 합덕성당,공세리성지도 둘러볼수 있어 참 좋았답니다.저희가족 여행을 성지순례로 했는데 그어느때보다 보람되고 좋은 시간 되었답니다.

  • 2007년 12월 2일 오전 12:57

    곡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를 알고서 이 음악을 들으니 늘 염려해오던 친구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워 애통해하며 삭혀야 하는 마음, 그리고 친구를 그리는 마음등이 절절이 와 닿는 거 같아요.. 아베마리아는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만한 것이 없다 생각했었는데, 이젠 이 곡도 많이 좋아질 거 같아요. 그리고 꼭 울 식구들 델고 한 번 가보고 싶네요.

  • 2007년 12월 2일 오후 9:24

    절반은 다녀온 기분이네요 덕분에 공부도 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