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밤 외출
/ 최은묵
문 없는 방
이 독특한 공간에서 밤마다 나는
벽에 문을 그린다
손잡이를 당기면 벽이 열리고 밖은 아직 까만 평면
입구부터 길을 만들어 떠나는
한밤의 외출이다
밤에만 살아 움직이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문을 닫고 잠들었다
나도 엄마 등에서 잠든 적이 많았다
엄마 냄새를 맡으며 업혀 걷던 시절엔
갈림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
나의 발은 늘 여유로웠다
어둠에서 꿈틀대는 벽화는 불면증의 사생아
내가 그린 길 위에서 걸음은 몹시 흔들렸다
걸음을 디딜수록 길은 많아졌고
엄마 등에서 내려온 후로
모든 길에는 냄새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열린 벽, 문 앞에 멈춰 냄새를 맡는다
미리 그려둔 여름 길섶
펄럭 코끝에 일렁이는 어릴 적 낯익은 냄새
오늘은 그만 걷고 여기 가만히 누워
별을 그리다 잠들 수 있겠다
하늘에 업힌 밤
오랜만에 두 발이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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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묵 / 1967년 대전 출생. 2007년《월간문학》신인상 당선. 2007년 제9회 수주문학상대상. 2012년 제4회 천강문학상 대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