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전례헌장(상)

2010. 11. 7. 오전 1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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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과정 지상중계]7 - 전례헌장(상)/ 정의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부총장)

 

모든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주고받는 대화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미사에서 성체를 영하기 위해 난간 앞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신자들. 【CNS】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이하 전례헌장)는 1963년 12월 4일 반포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반포된 첫번째 문서라는 사실이 전례헌장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공의회 목표가 전례헌장, 그 중에서도 제1장에서 드러날 정도다. 전례 쇄신은 곧 교회 쇄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례헌장은 전례운동의 열매를 종합한 것이다. 각 나라 교회에서 공의회 의제로 제안한 내용 중 4분의 1이 전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례 쇄신이 절실했다는 반영이다. 전례헌장이 반포되기까지는 전례 쇄신을 위한 연구와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

 전례운동은 1900년대 초반 프랑스 솔렘수도원에서 시작됐다. 라틴어로 하는 전례가 라틴어를 이해할 수 있는 특정 부류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례는 모든 이에게 적용돼야 한다며 일어난 전례 민주화 운동은 라틴어 미사경본을 자기나라 말로 바꾸고, 신자들에게 전례교육을 실시하고, 성가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한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의 전례 개혁은 기억할 만하다.

 전례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전례헌장 서론에서 그 의도가 드러난다.

 첫째, 전례는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나날이 증진시킨다. 이는 전례가 모든 사람과 관련된 것이지 몇몇 선별된 사람이나 지정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례라는 말마디를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시간으로 여겨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전례는 삶과 별개가 아니다. 전례와 삶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전례는 신앙을, 그리스도인의 삶을 특정짓는 행위다. 신앙생활이 곧 전례생활이기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기쁜 생활을 해야 한다. 전례가 삶에서 드러나야지 짐이 돼선 안 된다.

 둘째, 변경 가능한 제도는 우리 시대의 요구에 더 잘 적응시킨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핵심적 본질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 상징과 표현 양식은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전례는 고정되거나 고쳐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시대 변천 속에서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전례는 트렌토공의회 이후 400년간 고정돼 있었고 삶과 연결되지 못했다.

 또 신심 행위는 전례 행위를 잘하도록 하는 보조역할이다. 신심 행위에 우선을 두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셋째,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의 일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증진시킨다.

 전례개혁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고 교회 일치를 위한 결정적 공헌, 즉 하나의 교량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넷째, 모든 이들을 교회의 품으로 불러들인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위인 전례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거행돼야 하고 말씀이나 표징 안에서 보편적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 사명이 보편적 구원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전례는 외형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장엄하고 정중하게 하는 경신예배 예식으로 여겼다. 지금도 전례의 본질적 의미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다.

 전례헌장은 전례 거행의 근본바탕을 그리스도 사제직에 두고 전례를 정의한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적 표징들을 통해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예배를 드린다. 따라서 모든 전례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 다른 어떠한 행위와도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7장).

 전례의 주체자는 하느님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은 참 인간으로서 인류를 대표해 하느님께 예배와 흠숭을 드리고, 또 참 하느님으로서 구원 은총을 당신의 백성에게 전해 주신다.

 전례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인간 자신을 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행위이고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면에서는 하느님의 행위다.

 참다운 의미의 전례는 하느님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양자를 대상으로 하는 쌍방통행이다. 전례 행위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강적인 면(하느님 말씀, 은총)과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도움을 비는 상승적인 면(제사, 기도, 감사와 찬미)을 지닌다.

 그런 뜻에서 모든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주고받는 대화다. 어떤 전례든 하강적인 면, 상승적인 면 이 두 가지 방향선이 설정돼야 한다. 과거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로만 이해했다. 하느님 공경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형식적이고 기복적으로 흘렀다.

 전례는 예수께서 지상생활, 특히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완전히 재현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들이 선포하는 구원 활동을 모든 전례 생활의 중심인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해 수행하게 하셨다"(6장). 예수 그리스도는 전례 행사 안에서 항상 현존하시면서 당신의 위대한 구원 업적을 실현하신다. 이것이 전례의 내면적 요소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례가 이뤄지는 미사를 빼놓고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전례의 내면적 요소가 예수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이지만 이 구원 업적을 현실적 사실로 실현시키는 것은 말, 동작, 사물 등 인간 사회에서 사용하고 통용하는 감각적 표지들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잘 들어야 한다. 독서와 복음 말씀을 잘 듣지 않으면 하느님과 대화할 수 없다. 환호의 응답을 할 수가 없다.

 미사전례에서 거양성체 때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교육 받았다. 그런데 과거에는 신자들이 사제 뒤쪽 등을 보며 미사를 봉헌하기에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에 대해 거짓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은 실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 올려 보였다. 이것이 거양성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삶의 의미를 묵상하는 것이다.

 전례는 일곱성사와 직결돼 있으며, 성사를 집행할 때 두 가지 방향선이 이뤄지느냐를 봐야 한다. 즉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는 성사의 은총과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모든 전례 행위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공적 행위다(26장).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그것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 각자는 그 지체로서 맡은 직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형식적으로 흐른다.

 전례는 교회의 행위이기에 그리스도의 직무를 대리하는 주교를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사제, 부제 등 성직자의 지도와 주관 하에 실시해야 한다. 모든 평신도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했기에 전례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또 공적 특성이 있기에 가능하면 공동체를 이뤄 거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장 아름다운 전례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전례이기에 '전례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개인 신심을 미사 안에서 강조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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