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께 쌀 한 포대씩만
한 일간 신문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한국 사람도 아닌 분, 멀고먼 이태리에서 건너온 신부님-한국명 김하종, 이태리 이름 빈첸시오 보르도-께서 성남에서 운영하시는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최근 불어 닥친 불황의 여파로 운영에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드시러 오시는 노숙자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창고에 쌓여있던 쌀은 급격히 줄어들고, 불황의 여파로 도움의 손길은 거의 끊기게 되었답니다. 작년 12월 안나의 집에 전해진 위문품은 쌀 5가마가 전부였답니다.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시설이다 보니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운영비 전액을 순수한 민간 후원자들로부터 후원받아야 하는데, 꽁꽁 얼어붙은 연말경기로 하루하루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답니다.
점점 늘어만 가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상당히 엇갈리기도 합니다. "무료급식소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원점이다. 괜히 노숙자들에게 의존심만 키워주고 안하느니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만도 아닙니다. 얼마나 견디기가 힘들었으면 집에서 뛰쳐나왔겠습니까? 나름대로 한번 일어서려고 다들 얼마나 발 버둥쳐 봤겠습니까? 하다하다 도저히 안 되겠으니 거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굴뚝같을 것입니다.
몇 달 이곳저곳을 전전하다보니 이제 수중에 가진 돈도 다 떨어지고,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게 된 분들이 노숙자들입니다.
그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일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하더라고 분명히 하셨을 일입니다.
존경하는 노숙자들의 천사 김하종 신부님께서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답니다. 내일 당장 쌀 단 한 포대라도 보내드려야겠습니다. 한번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신 김하종 신부님께서는 198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1990년 한국에 오셨답니다. 외환위기의 한파가 몰아쳤던 1998년에 후원자들의 정성을 모아 "안나의 집"을 설립하셔서 실직자와 노숙자에게 식사,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종"이 되겠다는 결의에서 "하종"이라는 한국 이름을 스스로 지으셨다는 김하종 신부님은 늘 우리나라(한국)에서 봉사하다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답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십니다.
복음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앞으로 수행하실 사명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다음의 김하종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들어보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가끔 신선한 야채를 사서, 갓 구운 빵을 가져다가 노숙자들에게 원 없이 퍼주는 꿈을 꿉니다."
"안나의 집은 비록 가건물이지만 이곳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합니다. 노숙자들은 모두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한시적으로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그들은 누구 못지않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생명입니다."
"안나의 집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일해 주는데 저는 그들에게 정말 성의 있게 이 일에 참여할 것을 부탁합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식단처럼 풍요롭지 않더라도 청결하고 정성스럽게 해야만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 늘어선 긴 행렬, 그들 중에 내 절친한 친구 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국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활동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 성당은 바로 여기 안나의 집이에요. 제가 평생 섬길 사람은 여기 버림받고 가난한 이들이고요."
- 옮겨온 글 -
* Tel : (031) 757 - 6336

저,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는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네, 정말입니다. 저, 빈첸시오 신부는 난독증을 겪는 장애인입니다.
난독증이란, 읽는 것이 어렵거나, 각 낱말들은 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텍스트의 전체적인
뜻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입니다.
학창시절에 저는 이 장애 때문에 정말 고통스러웠고,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학우들보다 몇배 더 책을
오래 읽고 노력을 많이 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암기하는 것이 어려웠고, 집중을 오래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나의 머릿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생각은, 내가 어쩌면 바보이고.
정신적으로 뒤쳐지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치, 제 자신이 다른 학우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못하다는 강한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속에서 저는 점점 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고통으로 인해 저는 단단해졌고 현재의 저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목표를 실현했습
니다. 오로지 어려움을 겪는 꼴찌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신부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 번 제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한테 전념하는 걸까? 왜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많은 시간들을 봉사활동에 투자했을까? 다른 친구들처럼, 신나게 놀러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신부가 되었을 때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화’의 카리스마를 가진 성모마리아의 오블라띠 수도회를 골랐
을까? 좀더 평범한 수도회도 있었을 탠데... 왜 한국에 오자마자, 많은 노력과 희생을 바쳐서, 독거노인과, 버림받은
청소년들,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념했을까? 똑같이 아름답지만, 덜 힘든 사제직을 고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노숙자들, 정신지체아들, 교도소에 있는 젊은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살아야하나, 왜 ... 왜 그럴까?”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많이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이 저의
영을 섬세하게 만들고, 제 머리를 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고통이 저를 이렇게 다듬어주었기에, 심각한
이유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을 봤을 때,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을 저의 피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나
설명이 필요 없이. 그 고통을 제 영이 먼저 인식합니다. 다른 말이나 설명 필요 없이 그 고통은 저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같은 아픔과 소외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장애인 난독증을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저의 체험을 되돌아보면, 그것을 해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세가지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 도움은, 저의 부모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느린’ 아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저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 나의 한계들을 스스로 극복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큰 도움을 줬던 요소는, 저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고, 마음이 닫힌 아이
였지만, 저를 왕따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 집을 찾아와서 저를 ‘밖으로 끌어내서’ 같이 신나게 놀아주었고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로 하여금, 제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게 도와줬습니다.
세 번째 요소는 바로 저의 강하고, 결단력 있고, 도전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난독증이 가져오는 어려움들
앞에서 저는 한번도 주저앉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용기 있게 상황에 굴하지않고 어려움들을 이겨나갔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지금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나의 집이라는
센터를 설립했고, 이곳에서 매일 400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거리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다른 봉사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출청소년을 위한 집도 세채 마련할 수 있었고, 한국에 난독증을 알리기 위한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난독증의 고통을 통해, 정신과 영이, 제 주위에 있는 고통들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져졌기에,
저는 이 일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고통이라는 자매여, 고맙습니다. 당신의 강하고 아픈 포옹으로 저의 위선과 자존심을 깨부수셨으니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손을 잡고 겸손함으로 “친구야 도와줘, 너의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저의 벗, 난독증이여, 고맙습니다. 당신은 저를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으로 인도하였고, 인생의 길을 걷는
동안에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고독함이여, 고맙습니다. 당신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인간 심리의 어두운 미궁 속으로 저를
하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이여,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가련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셨음에도, 저를 계속 신뢰
보잘것없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친구들도, 고맙습니다. 함께 하는 단순한 놀이들로, 그리고 기쁨과 순수함으로 저를 치료해준 여러분들이기에
감사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항상 어렵고 힘든 이 여정을 함께 하시고, 당신의 힘을 주셔서, 제가 싸우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죄송합니다. 가끔은 제가 의심을 하고, 유혹에 빠져 실수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때때로 어떤 순간에는 힘에 부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가능하다면 저에게서 힘듦과
고통을 떨쳐버리소서,. 이제는 제가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고통이라는 학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
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의 여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판단되시면, 천사를 한명 보내주시어 제가 깊은 고독함에
빠질 때 위로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지겨운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오면 주여, 저에게 (Cireneo)를 보내시어, 그가 잠시라도 저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주도록 허락하소서. 큰 의심과 불확신의 순간들이 찾아오면, 저에게 베로니카를 보내시어, 그녀가 저를 보고,
온유함과 사랑으로 저의 눈물을, 당신을 보지 못하게, 그리고 앞에 놓인 길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눈물을 닦아
주게 하소서.
주님 제가 항상, 고통 속에서도 당신께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