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1.23) - 연중 제3주일 월요일

2006. 1. 23. 오전 8:59:56

글자
2006년 1월 23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무엘 하권 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복음 마르코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꼬마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 왜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 침대는 왜 없어? 그리고 또....”

엄마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요. 하지만 곧바로 침착하게 아이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피아노, 침대가 없어도 우리 집은 부자란다. 책꽂이를 보렴. 얼마나 많은 책이 있니? 이렇게 책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란다. 왜냐하면 책을 많이 읽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져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든. 따라서 우리 집은 부자야. 알았지?”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날 저녁, 이 아이는 자기 집을 방문한 이모를 붙잡고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합니다.

“이모, 우리 집 엄청나게 부자다.”

이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밥 먹던 숟가락까지 떨어뜨리면서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언니, 로또 당첨된 거야?”

아이들도 이해하는 마음의 부자를 우리 어른들은 항상 물질적인 부자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물질적인 풍요가 바로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간직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더욱 더 힘들어 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다가온 진리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며칠 전, 저와 같이 신학교에서 한 달 피정 지도를 하는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나도 요즘 아이들이 많이 하는 싸이를 만들었는데, 하루 방문 수가 5명도 안돼.”

그래서 제가 어제 신학생들과 함께 그 싸이 방문 수를 엄청나게 늘려 놨지요. 그랬더니 그 신부님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면서 말이지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숫자가 많다고 해서 떡 하나가 더 생기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그 숫자가 늘었다고 만족하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들은 세속적인 욕심을 가지고 너무나 큰 것만을 원하고 있으며,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않음 자체를 두고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절망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밟고서라도 그 목표를 채우려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 시대에 이렇게 세속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욕심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하며, 그래서 자신의 말을 모두가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편이 되자고 했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선자’라고 하면서 혼을 냅니다. 그러자 그들은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비방까지 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율법학자들의 관계를 말씀드렸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세속적인 욕심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비방하는, 그래서 성령을 모독하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들만큼 열심히 살았던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식과 오랜 기도생활, 또한 남들이 도저히 따라 하기 힘든 금욕생활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인정받고자 하는 명예에 대한 세속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요? 혹시 명예는 물론 물질적인 욕심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는 말이 바로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되지 않도록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속적인 것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백원의 가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