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1.10) - 연중 제1주간 화요일

2006. 1. 10. 오전 8:44:04

글자
2006년 1월 10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무엘 상권 1,9-20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 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복음 마르코 1,21ㄴ-28
[카파르나움 마을에서,] 21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신부들은 보통 수단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 수단을 자세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수단에는 많은 단추들이 있지요. 여기서 제가 문제 하나 냅니다.

“그 단추의 수는 과연 몇 개나 될까요?”

사실 이 문제를 이 묵상 글에서 처음 낸 것은 아니고, 예전에 제가 부제 때 어린이 미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냈었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제 수단의 단추 숫자를 세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강론대와 아이들과의 간격 때문에,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의 방해 공작 때문에 아이들은 그 숫자를 제대로 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말하는 그 숫자가 얼마나 다양했는지 모릅니다. 15개부터 40개까지 숫자가 나왔으니까요. 즉, 아이들은 정확한 숫자를 셀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대충만 ‘몇 개가 아닐까?’라는 판단만 할 뿐이었지요.

만약 정확하게 그 숫자를 알고자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제 수단의 단추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그 숫자를 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확한 숫자를 말할 수 없고, 대신 ‘대충 몇 개’라는 식의 답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제 수단의 단추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숫자를 세어야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보아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주님은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결론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쉽게 주님에 대해서 실망을 하기도 하고, 또한 원망을 터뜨리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권위 있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시고, 많은 병자를 치유해주시며, 악령들을 쫓아내자,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서 큰 소리로 예수님께 외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이 놀라운 선언은 주님의 정체를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었지요. 그리고 주님께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즉, 악령의 이 말은 사람들이 주님을 대충 알게 하려는, 그래서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의도를 아시고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자기 자신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더욱 더 발전을 시켜서 주님의 훌륭한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도구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많은 유혹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당 가는 것을 방해하는 유혹들,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유혹들, 선행을 하려할 때 문득 생기는 의심들, 귀찮다는 이유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유혹들…. 그리고 그 유혹들이 우리 주님을 대충 보는 데에만 머무르도록 합니다. 이러한 유혹들이 있을 때 우리는 주님처럼 말해야 할 것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합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세상을 바꾸는 작은 관심'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는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합니다"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단어는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네 단어는 "당신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당신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우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단어는 "나"라고 합니다.

이 글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를 실천하고 살아 간다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산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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