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 마르코 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이다.”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 오시는 분들은 세 마리의 강아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마리 강아지들의 관계는 ‘아빠, 엄마, 딸’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아빠와 딸은 친한데, 엄마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답니다.
소위 이 사회에서 ‘왕따’라는 것을 강아지 세계에서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아지 세계에서도 ‘왕따’라는 것이 있을까요?
제가 본 사실을 토대로 할 때, 강아지 세계에도 분명히 ‘왕따’는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더군요.
이 세 마리의 강아지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강아지는 엄마 강아지랍니다. 아빠 강아지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노련미(2살 더 많음)로 싸우면 항상 엄마 강아지가 이긴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맘에 안 들면 아빠 강아지나 딸 강아지를 물어버리곤 하지요. 따라서 이렇게 난폭한 강아지 곁에는 아예 가지 않는 현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아빠 강아지와 딸 강아지는 한 개집에서 같이 자는데 반해서, 엄마 강아지는 혼자서 자고 있습니다. 사실 추운 겨울에 밖에서 키우기 때문에, 분명히 함께 자는 것이 따뜻하련만 이 세 마리는 결코 뭉치지 않습니다.
분명히 엄마 강아지가 제일 힘이 셉니다. 하지만 힘이 세다고 한들, 그 강아지 사회에서 얻는 이득이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에 웅크리고 혼자서 힘들게 자야 하는 것은 물론, 늘 외로움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정말로 당신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그리고 우리 인간의 구세주이신 분이 인간의 세례를 받으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왜 이렇게도 힘 센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각종 세속적인 능력의 있고 없음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낮은 자의 모습. 그 모습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지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지금 내 모습은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혹시 높은 자의 모습만 취함으로써 스스로 힘든 삶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낮은 자의 모습. 그래서 함께하는 삶.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며, 그래서 나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 삶을 향해서 나아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맙시다.
행복에 이르는 길(안만식, '기다림이 있어 삶이 아름답습니다' 중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남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주어지지 않은것을 욕심내면 삶은 고텅스러워집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것이 다르 듯 주어진 것으로 삶을 가꾸고 꽃 피우는 법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느끼는 행복도 다른 법입니다
행복은 주어진 것으로 만들어야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면 부족함과 불평으로 자신의 삶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을 이루었냐는 주어진 삶 끝에 서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고 감사하며 '만족하며 사는 삶' 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불평하기보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는 것, 하루 하루를 감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