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1.12)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2006. 1. 12. 오전 8: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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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무엘 상권 4,1ㄴ-11
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복음 마르코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한 때 허무 개그라는 것이 유행했었습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말씀드려보지요.

1. 허무 : 불이야.. 불이야..~~~ 허무2 : 불꺼 ~~ 허무 : 네...

2 허무 : 부모님의 원수를 위해.. 10년을 칼을 갈았다.. 허무2 : 더 갈아... 허무 : 네...

3 허무 : 부모님의 원수를 이제야 갚는구나 허무 2 : 그만잊어 허무 : 어 그래

그런데 이 허무개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여러분이 어떤 부탁을 드려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씀을 하시겠어요?

“선생님, 이것 좀 해주시겠어요? 물론 바쁘시면 제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마 이런 식으로 부탁하겠지요. 그런데 이 질문을 받으신 분이 곧바로 “어 그래.”라고 답하면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청을 드렸던 사람이 조금 어이없지 않을까요? 앞선 허무개그와 비슷하지요?

그런데 이런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일까요? 아니지요. 정 바쁘면 어쩔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들어달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하지만 허무개그처럼 다른 이유는 전혀 붙이지 않고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거절한다면 서운할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이러한 구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따라서 깨끗하게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씀일까요? 가능하다면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 달라는 청일 것입니다. 이 청을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 나병환자의 말에 더 강한 동의를 넣어주시지요. 그래서 “내가 하고자 하오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나병환자의 청을 예수님께서는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부탁을 하십니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지만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신 예수님과 달리, 그는 예수님의 부탁을 전혀 들어드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뜻과 반대로 세상에 그 이야기를 널리 알리지요.

바로 이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청을 계속해서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보다 더 당신 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청을 얼마나 듣고 있나요?

사랑하라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좀 살아달라고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간절한 청을 넣어주시는데 우리들은 ‘알았습니다.’라는 답변만 할 뿐, 고개를 돌리면 잊어버렸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과의 허무개그는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대신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는 주님께 보답하는 길이니까요.


웬만하면 다른 이의 청을 꼭 들어줍시다.



슬기와 인내('사장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강철왕 카네기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하루는 어머니를 따라 식료품 가게에 갔다. 어머니가 물건을 사는 동안 카네기는 앵두 상자 앞에 서서 앵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 보던 주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앵두가 먹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한줌 집어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카네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앵두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도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께서 허락 하셨으니 어서 한 줌 먹으렴."

그래도 카네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주인이 기특하다는 듯이 한 웅큼 앵두를 집어 주자 그때서야 카네기는 인사를 하고 받았다. 가게 문을 나선 후 어머니가 물었다.

"왜 가만 있었니?" 카네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손이 내 손보다 크니까요."

슬기와 인내, 이것이 카네기를 키운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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