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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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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레위기 25,1.8-17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또 일곱 해를 일곱 번 해서,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 맞아 사십구 년이 지나서 일곱째 달이 되거든 그 달 십 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죄 벗는 이날 너희는 나팔을 불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오십 년이 되는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낼 해이니, 씨를 심지도 말고 절로 자란 것을 거두지도 말며 순을 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절로 열린 포도송이를 따지도 마라. 이 해가 희년이니, 이 해를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너희는 밭에서 난 소출을 먹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야 한다. 네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에게서 무엇을 사는 경우에, 이웃끼리 서로 억울하게 하지 마라. 너는 동족에게서 사들일 때에 희년이 몇 해가 지났는지 따져 보아라. 파는 사람은 소출을 거둘 햇수를 따져서 값을 매겨라. 소출을 거둘 햇수를 따라 사고팔아야 하기 때문에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많이 치르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적게 치러야 한다. 너희는 동족끼리 서로 억울하게 하지 마라. 너희는 하느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의 주 하느님이다.”
복음 마태오 14,1-12 그때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일찍이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어떤 부자가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어요.
“누구든지 인생의 참 만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오시오. 내가 1만 달러를 주겠소.”
지정한 날이 되자 수백 명의 남녀가 이 부자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서 어떻게든 이 현상금을 타가려고 앞 다투어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지요.
“선생님, 저는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늘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훌륭한 부모와 아내가 있어서 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불평거리가 없습니다. 항상 만족합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삶이 만족스러운 이유를 늘어놓았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러분도 이 1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서 응모한다면, 어떤 이유를 들겠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한 사람이 1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을까요? 하지만 이들 중에서 현상금 1만 달러를 받아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자의 다음과 같은 질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신들의 말대로 당신들이 그렇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왜 내 돈 1만 달러를 받아내려고 하십니까?”
지금의 상태가 그렇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굳이 현상금으로 내어 놓은 돈을 타기 위해서 응모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현상금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그 부자 앞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편리에 따라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가, 또 불행한 사람이 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네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왕을 떠올려 봅니다. 그 역시 행복을 찾았고, 그래서 자기 편리에 따라 행복을 선택합니다. 즉,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재혼함으로써 행복을 쟁취하지요. 그러나 정말로 행복해졌을까요? 순간적인 기쁨을 누리기는 했지만, 늘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고 말하면서 불안에 벌벌 떨지요. 즉, 그는 불해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기 편리에 따라 만들어진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가득하다면 진정한 행복도 함께 자리를 하는 것입니다.
해외 토픽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청년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한 번에 돈 백만 달러를 걸고 노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몽땅 잃어버렸고, 청년은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이 해외 토픽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청년이 썼던 한 줄의 유서 때문에 해외 토픽이 되었다고 하네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내 마음에서 외치고 있는 사랑의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박을 하지 맙시다.
씨앗과 하수관의 차이 콜드는 그룬트비에 의해 세워진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사람입니다. 그의 소박하고 알아듣기 쉬운 강의는 듣는 사람들에게 항상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강의 내용을 필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평생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그 내용을 써두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콜드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걱정 말게. 땅속에 묻는 하수관은 땅위에 표시를 해두어야 찾아낼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씨앗은 별다른 표시를 해두지 않아도 반드시 움을 틔우는 법일세. 내 말이 산 것이라면 어느 때이고 자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네."
모래나 씨앗은 겉보기에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모래는 생명이 없고 씨앗은 있습니다. 가치의 판단은 겉모양의 크기나 꾸밈에 있지 않습니다. 그 생명력에 두어야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