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7.18) - 연중 제16주일 월요일

2005. 7. 18. 오전 8: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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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8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출애굽기 14,5-18
그 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정보가 이집트 왕의 귀에 들어갔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부려먹지 않고 풀어 보내다니, 안 될 일이다.” 하고 말하였다.
파라오는 병거에 말을 메워 백성을 거느리고 나섰다. 특수 병거 육백 대로 편성된 정예 부대를 앞세워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해 가지고 나섰다.
주님께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셨으므로 그는, 의기양양하게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파라오의 병거와 기마, 기병, 보병 등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뒤쫓아 비하히롯 근처 바알스본 앞 해변에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다.
파라오가 다가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니 이집트인들이 덮칠 듯이 뒤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은 질겁을 하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모세를 원망하였다.
“이집트에는 묻힐 데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끌어내어 여기에서 죽이려는 것이냐?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느냐?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더냐?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편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느냐?” 모세가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두려워하지 마라. 움직이지 말고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아라. 너희가 오늘 눈앞에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리라.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모두들 진정하여라.”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기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진하라고 명령하여라. 너는 너의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팔을 뻗쳐 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건너가게 하여라.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이 굳어지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이 너희를 뒤따라 들어서게 되면 내가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을 쳐서 영광을 드러내리라.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이 비로소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복음 마태오 12,38-42
그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배 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심판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엄마랑 아이가 성당에 가는데, 그 길을 가면서 아이가 장난을 너무나 심하게 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엄마는 화가 많이 났지요. 그래서 엄마는 순간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랄 좀 그만해!”

성당에 도착했을 때, 마침 신부님께서 성당 마당에 나와 계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그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물었지요.

“얘야, 성당 오는데 많이 힘들었지? 그래... 성당 오는데 너희 집에서 몇 분이나 걸리니?”

그러자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지랄하고 오면 20분, 지랄 안 하고 오면 10분이요.”

어머니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말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말을 했겠지만, 이 아이에게는 이런 식으로 말할 정도로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무심코 쓰고 있는 말들. 이 말들이 다른 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말을 아무런 책임감 없이 내 뱉고 있나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로 인한 상처로 커다란 아픔을 안고 있는지요? 물론 반대로 나의 말 한마디로 커다란 상처에서 극복해서 새로운 힘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을 얻는 사람보다는 상처를 받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 말 한마디로 다른 이를 살릴 수도 있고, 또 죽일 수도 있다고 볼 때, 이 말이라는 것만큼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을까요? 그러면서 아무 것도 아닌 나의 입을 통해서도 주님의 기적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꾸짖습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고 인간 세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들만을 기적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기적일까요? 단지 이상한 현상 정도로 그치고 말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떠나서 우리들의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참된 기적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기적은 나의 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이 이루어집니까?

도저히 회개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 한마디만을 듣고서 모두 회개한 것보다 큰 기적이 없다고 하셨듯이, 별 다른 힘이 없을 것 같은 나의 말 한마디로 사람들이 다시 주님께 되돌아온다면 그것보다 큰 기적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은 얼마나 흔하게 내 주변에서 아니 내 안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는가요?

내 입에서부터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악마의 말이 아닌 천사의 말이 나오도록 노력하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욕하지 맙시다.



직선보다는 굴곡있는 세상

운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나치게 직선으로만 설계된 도로는 운전자들의 방심을 초래하기 쉽다고 합니다. 가장 과학적인 도로는 어떤 도로일까요? 언뜻 생각하면 출발지점에서 종착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해서 두 지점을 가장 짧은 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되고 에너지도 절약된다는 점을 감안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로는 3분에서 5분 간격으로 한 번씩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도로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고속도로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프랑스 남부의 고속도로는 프랑스 교통의 중심지인 뚤루즈 유명한 해변 휴양지인 니스를 연결하는 중간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 도로는 평균 4분마다 한번씩 곡선로가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너무 평탄하기보다는 가끔씩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을 정도의 굴곡은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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